탁구장

은평구 불광동에서 국민학교를 다닐 때 살던 집이 작은 정원이 있어서 탁구대가 있었습니다. 그때 같이 살던 외삼촌, 이모, 동생이 탁구 상대였습니다. 기억이라곤 얍삽한 서브 기술하나 개발하면 족히 몇주는 잘 써먹었던 거하고 얄미운 커트에 라켓을 대기만 하면 이상한 곳으로 공이 튀어 나가거나 네트에 걸려서 울화가 치밀었던 뿐입니다. 물론 이러다가 한살아래 동생하고 드잡이하면서 싸우곤 했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제가 운동신경하고는 거리가 멀어서 맨날 졌는데 승부욕은 강했거든요.

중학교때 탁구부가 생겼는데 탁구대는 고작 4대. 엄청난 지원인파에 성적순으로 짤랐는데 기적적으로 그때 제가 뽑혀서 일년동안 탁구대앞에서 잘 놀았는데 뭐 레슨이나 이런거 받아본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탁구하고는 별 인연이 없었고 몇년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유승민 선수가 강화출신이란거 정도? (이게 무슨 인연이라고....) 운동장이 꼬딱지만한 재관이가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탁구를 치는데 워낙 운동광인 이녀석이 축구, 농구에 이어서 탁구에 바록 꽂히고 말았습니다. 가끔 동네 탁구장에 가서 예전의 얍삽한 써브 몇개와 가끔 들어가는 드라이브로 매번 시합에서 묵사발을 만들어 주곤핬습니다.(초딩 6학년한테 농구 1:1을 지고나서 한동안 울화속에 밤못들었던 밤을 생각하면 이 어찌 쾌거가 아닐런지요?) 한데 이녀석이 점점 실력이 늘더니 이제는 가끔 듀스까지 가다가 제가 지는 사태까지 발생.

실력으로 밀릴 때는 역시 장비빨 아니겠습니까? 바로 탁구용품 검색에 들었갔습니다. 고슴도치 탁구클럽에(http://cafe.daum.net/hhtabletennis) 들어가니 엄청난 정보에 놀랐습니다. 예전에 탁구칠 때는 그저 라켓을 머리카락에 쓱 문질러서 안미끄러지면 최고였는데 이쪽도 자세히 알아보니 그 다양함이 정말 놀랍더군요. 펜홀더도 중국식, 일본식이 따로 있고 쉐이크핸드는 그 종류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다양한 러버의 종류까지 생각하면 가능한 조합은 무궁무진....  저는 일본식 펜홀더니까 별로 고민 안하고 다들 추천하는 XIOM에서 나온 프로라이트 플러스에 러버는 베가 아시아, 재관이는 저렴한 챔피온에서 나온 프로 오프 블레이드에 러버는 헥사+칸 으로 정했습니다. 블레이드에 러버를 붙여서 학교에 가져간 재관이가 바로 서열 2위로 뛰어올랐다고 입이 찢어져서 왔습니다.(역시나 도토리 싸움에는 장비빨!) 


오매불망 재관이는 아빠랑 탁구장가는 즐거움에 빠져있어서 틈만나면 탁구장에 가자고 조르는데 얼마전에는 마라톤 연습하느라고 장장 22km를 뛰고 돌아와서도 탁구장에 가서 두시간이나 탁구를 쳐준적도 있었습니다.(애비 노릇 쉽지 않습니다.^^)  엊그제에는 중간고사가 끝났다고 친구들은 노래방이나 피씨방으로 갔는데 재관이는 저랑 탁구를 치겠다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왔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특이하게 좀 멀리있는 "짱탁구장"이라는 곳을 소개받아갔습니다.


이 탁구장은 그 규모가 거의 축구장 수준이었습니다. 넓은 탁구장에 레슨실도 따로 있고 제일 맘에 든 건 로봇 연습기가 4대나 있어서 회원이 아니더라도 요금만 내면 쓸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동네 탁구장에서 로봇 연습기를 사용해 보려다가 '회원'만 쓸수 있다고 해서 기죽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재관이가 필살 무기를 위한 원포인트 레슨을 받는 동안 저는 로봇하고 열심히 연습을 했는데 이게 참 좋은 게 제가 잘못쳐도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 좋더군요. 레슨 받은 재관이가 용기 백배 달려들었으나 가볍게 5:1로 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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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체험기 - 라이더, 러너가 되다.

마라톤 전날 : 점심시간에 마지막으로 몸을 푸는 의미에서 평소 연습하던 논두렁 코스를 1km당 5분 30초 페이스로 달리는데 다리가 무척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불길하더군요. 게다가 살살 달렸는데도 오른쪽 발목 통증까지...  어쨌거나 시험은 다가온거고 평소에는 절대 국수 종류로는 저녁을 안먹지만 카보로딩한다고 삼일 내내 파스타로 포식을 했습니다. 덕분에 체중이 오히려 늘었네요. ㅠ.ㅠ

저녁 먹고 아이들에게 퀴즈를 냈습니다. 다음중 아빠의 현재 심정은?
1. 떨린다.
2. 왜 이런 짓을 시작했을까 후회하고 있다.
3. 자신만만하다.
4. 어디서 태풍하나 안올라오나 일기예보 뒤지고 있다.

(정답은 ? : 1,2,3,4)

당일 아침 : 밤새 각종 버라이어티한 꿈에 시달리느나 잠을 제대로 못자고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매번 시험때마다 깊은 잠을 못자는 새가슴이니 뭐 그러려니 했으나 마라톤 전날도 떨려서 잠이 잘 안오는 건 무슨 의미?  어제 미리 준비해둔 찹살떡으로 아침을 먹고 수분공급을 위해 전해질 음료를 1.5리터 마셨습니다. 길상면에 도착하니 많은 분들이 오셨더군요. 이런 대회에 처음 참가하는 거라 참 신기한 풍경이었습니다. 풍물패도 오고 거리에는 모자, 러닝팬츠 등등에 스포츠 고글에 파워젤까지 파는 노점상, 솜사탕도 팔고....^^







스트레칭하고 미리 공부한대로 10분정도 살짝 땀나게 뛰었습니다. 운동장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서 뛸 공간이 없어서 운동장밖 도로에서 뛰었습니다. 대부분 무슨무슨 동호회 소속이라 여럿이 둘러서서 스트레칭도 하고 텐트에서 먹기도 하던데 저는 무소속이라....^^

9시 20분에 풀코스 참가자들은 출발선에서 준비하라는 방송이 나와서 긴장된 마음으로 출발선 뒤쪽에 섰습니다. 번호표에 달려있는 칩으로 시간을 계측하니까 앞에서 달리기 위해 몸싸움할 필요가 없어서 좋습니다. 이 대회는 규모가 작아서 그럴것도 없지만 수만명이 참가하는 대회는 정말 대단했겠어요.




드디어 출발! 손목시계의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나가니 출발선에 김여사와 지관이가 보입니다. 혹시나 다시는 못볼수도 있으니 바로 앞으로 달려가서 둘한테 뽀뽀를 하고....^^  (이것만 안했어도 3초 줄이는 건데...)  김포 사우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동원되어 출발선에서 박수를 치며 하이파이브를 해주는데 기분이 잠깐이나마 삼삼했습니다. 5분쯤 달리는데 도로변에서 고구마 파시는 할머니께서 '허구헌날 마라톤 한다고 난리치면 도대체 언제 장사하라는 거야?'하며 뭐라하시더군요. 취미로 이 고생하는 사람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겠죠.


강화 덕신고등학교 풍물패



계획대로 처음 3km는 6분페이스로 달리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과 처음 함께 달리니 이것도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저절로 빨라져서 계속 시계를 보면서 마음을 다독여야했네요. 처음으로 급수대 도착. 오늘 처럼 더운 날씨에는 목이 마르기 전에 미리미리 수분 공급을 하지 않으면 탈수증에 걸리기 때문에 모든 급수대에서 물을 먹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물을 안마시고 지나치시더군요. 달리면서 먹는게 어색했지만 성공적으로 물공급. 물을 준비해 주는 학생들이 물 마셔준다고 고마워하더군요.^^  오킬로 미터 기록이 28분. 4시간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가다가 아무래도 너무 느려서 앞으로 나서는데 등에 배낭지고 깃대에 태극기 꽂은 분이 가볍게 저를 추월합니다. 갑자기 울컥해으나^^  참을 인자를 세번 쓰면서 5분 페이스 유지. 드디어 3시간 45분 페이스 메이커 풍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볍게 붙으니 의외로 다리가 가볍습니다. 이때 절대 오버페이스 하면 안된다고 공부했기에 계속 달리는 중에 이대로 15km까지 함께 달리다가 페이스를 올려서  30km 이전에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와 합류해고 막판에 추월을 시도해 볼까? 하는 아주 깜찍-발랄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마라톤 데뷔 주제에 간이 배밖으로 나온거지요^^) 과연 강화코스의 언덕은 악명 높았습니다. 초반 언덕이야 체력이 있으니 다들 문제 없이 올랐지만 10km에 있는 제일 높은 언덕이 나오자 다들 속도가 떨어집니다. 이때다 하고 언덕연습하던대로 성큼성큼 올랐더니 정상에 하프코스 반환점이 있었습니다.(과연 반환점도 언덕에...^^)  10km 지점에서 처음으로 준비해온 파워젤을 하나 먹었습니다. 급수대에 껍질을 버리니 봉사온 학생들이 신기한듯 소근거리네요. "뭐 이상한거 먹네. 껍데기 줒어봐." "뭐야? 짜요짜요 같은데?" - 귀여운 녀석들. 이 친구들 덕분에 그나마 잘 달렸습니다.

15km 지점에서 3시간 45분 페이스 메이커 주자들을 뒤에 두고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중에 헐렁한 달리기 바지가 아니고 타이트한 핫팬츠 스타일의 팬츠와 타이트한 상의를 입은 몸매가 아주 아름다운 여자주자 하나가 참 맘에 들었는데(두슨 달리기 아카데미 라고 써있더군요) 저보다 페이스가 늦어서 아쉽게도 뒤로하고 달렸습니다. 이때부터는 드문드문 거의 무인지경으로 외롭게 달려야했습니다. 대회에 나가면 좀 덜 외로울줄 알았는데...ㅠ.ㅠ  그래도 연습하던 언덕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성큼성큼.... 이때부터 왼쪽 허벅지에 경미한 근육통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페이스는 계속 5분으로 유지. 이제 마지막 언덕을 넘었으니 17km 통과하고 반환점만 생각하면서 달렸습니다. 이때 선두차량과 함께 일등,이등이 함께 달리고 있었습니다. 선두차량의 시계에는 무려 1시간 34분. 3등은 엄청 뒤에 달리고 있었고.  반환점을 앞둔 20km 기록이 1시간 44분. 연습할때 최고 기록이 1시간 48분 정도였으니 또 기록 단축이군요. 머릿속으로 아무리 계산해도 3시간 30분으로 들어가기는 힘들겠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반환점을 돌아가는 3시간30분 페이스 메이커가 보였습니다. 여자선수도 두세분 지나가고. 이때까지만 해도 3km정도 뒤졌으니 곧 따라잡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마지막까지 풍선뒤꽁무니도 보지 못했습니다.^^  반환점에서 두번째 파워젤 섭취.

드디어 반환점. 언덕 코스 아니랠까봐 풀코스도 반환점이 나지막하지만 언덕에 있었습니다. 반환점을 돌면서 센서위를 지나가니 경쾌한 '삑'소리.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힘차게 달리려고 했으나....^^  마음은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서서히 페이스가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겠더군요. 반환점 이전에는 대부분 5분이내로 달리고 있었지만 하프 이후에는 서서히 5분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점점더 더워지는 날씨. 이제는 오른쪽 허벅지에도 근육통이 생기고 다리는 무겁고... 그동안 22km 이상 달려보질 않아서 그 이후는 미지의 세계. 거리를 보니 25km. 어! 그냥저냥 달리만하네? 언제가 힘들거지? 드디어 30km지점. 아직도 달릴만하네? 35킬로가면 힘들겠지? 이러면서 40km 까지 언제가 힘들어지나 궁금해하면서 달리는데 놀랍게도 계속 달릴만했습니다. 속으로 "오! 놀라워. 임성식. 잘하고 있어. 계속 달리는 거야"를 주문처럼 외우며 달렸습니다. 앞에 보니 드문드문 사람들이 있는데 달리는 사람들 보다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한명씩 추월하면서 세기 시작했습니다. 열댓명쯤 추월했는데 35km 지점에서 갑자기 엄청난 페이스로 달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떨어질수 없다는 마음으로 페에스를 올려서 나란히 달리는데 무려 4분 30초 페이스....  모처럼 라이벌(응?)을 만나서 같이 가고 싶었으나 200미터쯤 달리니 이대로 달렸다가는 죽을거 같다는 공포가 밀려옵니다. 바로 꼬랑지를 내리고 뒷태를 보니 호리호리한 엄청난 포스의 장거리 주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뭐하시다가 후반에 기를 죽이시는 건지....^^   32km에서 마지막 파워젤을 먹고 역시나 외로운 달리기. 전반부에 가볍게 넘은 언덕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고통 그자체였습니다. 심장파열 언덕이 아니라 허벅지 파열언덕....^^   그래도 40km 까지는 5분 30초 페이스 유지.(스스로도 아주 놀라운 기록이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전구간을 5분 30초로 달리서 겨우 턱걸이로 4시간 이내에 들어가는 게 목표였는데)  40km지나니 이제 다리는 천근만근.





지관이가 멀리서부터 열심히 달리면서 찍어주었습니다.



주위에서 힘내세요! 를 외쳐주나 다리는 제 통제를 넘어서서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고 출발때는 몰랐던 언덕이 줄줄이 네개나 있었습니다. 머리속에서는 계속 일부터 백까지 세는데 아흔아홉 다음에 하나가 아니고 쉰하나를 외우고 있더군요. 또한 알고 있는 모든 욕을 다하면서 달리고 있는데 멀리서 김여사가 보였습니다. 저를 보더니 힘내라고 외쳐주기는 커녕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합니다. 저도 덕분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눈을 못뜨겠더군요. 마지막 언덕 앞에서 지관이가 사진을 찍는데 겨우 손만 살짝 들었습니다.

드디어 골인!  생각 같아서는 그대로 눕고 싶었지만 회복을 위해 천천히 운동장을 걷다가 지관이가 타준 회복음료를 마시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다시 천천히 운동장을 돌았습니다.



웃으려고 애쓰나 웃는 얼굴이 아니군요. 혼이 빠져나간 얼굴^^




전체 4등을 하신 김포마라톤클럽 & 김포를달리는순박한자전거의 진성환님. 이런 고수인줄 모르고 레이싱 내내 찾았는데 어쩐지.....^^


스트레칭을 하면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왠 사람이 제 앞으로 오더니...

"안녕하세요? 완주를 축하합니다. 러너스 월드 한국판 김아무개 기잡니다. 인터뷰 좀 하겠습니다."

엥? 저는 우승자도 아닌데 무슨 인터뷰를....

"뭐 기자맘인데 왠지 독특한 이유로 마라톤을 뛰신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요."

괜찮습니다만 별거없는데....

"먼저 소속은?"

소속이랄것도 없고 그저 강화읍 논두렁을 달렸으니 '강화 논두렁 클럽'이라고나 할까요?

"논두렁 클럽이요? 특이하네요. 클럽 소개좀...."

소속이 확실한 회원은 저까지 두 명이고... 어디든지 강화에서 논두렁을 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논두렁 클럽 소속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신은 모르고 있겠지만요.

"그렇군요. 마라톤을 하시게 된 동기가 왠지 심상치 않으실 거 같은데"

인간이 장거리 주자로서 진화되었다는 책(본 투 런)을 읽고 과연 진짜로 그런가 궁금해서 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달려보시니 어떻습니까? 정말 그 논문이(Endurance running and the evolution of Homo,
Dennis M. Bramble1 & Daniel E. Lieberman2   ,Nature 2004) 맞는 거 같던가요?   장거리 달리기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든 주요 요소고 인간이 달리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폭력, 비만, 질병, 우울등 많은 문제가 생겼다고 공감하시게 되셨습니까?"

한번 풀코스 달려보고 바로 동감하기는 힘든데... 지금 심정은 인간은 그냥 자동차 타기 위해서 진화된거 같아요. 달리기는 너무 힘드네요.^^

"기사에 안올릴테니 그런 거창한 이유말고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사실은 뱃살좀 빼서 쫄티좀 입어보려고.... 얼굴이 안되니 몸이라도 어떻게 만들어 볼까해서 .....  그러면 여자들한테 인기가 좀 있을까 했는데....  뭐 별 효과는 없을 거 같군요. ㅠ.ㅠ

"네... 그렇죠?  솔직한 답변 고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애절한 눈빛의 김여사가 제 손을 잡고 말하더군요.

"여보!  이번이 마지막이지? 또 안할거지?"



----PS
1. 설마 한국어판 러너스 월드를 검색해 보시는 분은 없겠죠?^^

2. 제가 달린 세부 내용이 궁금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connect.garmin.com/activity/52513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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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산

사람과 산  2010년 10월호

182 피플  임성식 글 현동욱 사진 주민욱





















매일 90킬로를 달리는 산악인 의사 임성식

자전거 라이딩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산악인이며 의사인 임성식씨(44세)는 하루 왕복 90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린다.목동 집에서 강화의 병원까지 출퇴근을 위해서다. 그는 달리면서 몰랐던 세상을 배우고, 길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자전거로 다니다 보니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이 보이고, 도로에서 차에 밀려 자꾸 갓길로 밀려나다 보니,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고, 평소 약자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아무리 착하게 살려고 한다 해도 자신이 의사이다 보니, 주류 기득권층으로 살아왔기에 사회적 약자나 소외 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것.

그는 자전거 운행거리를 매일 기록하고,자전거를 타면서 절약되는 승용차 연료비를 매달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또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태풍이 불거나 적설기에 자전거를 못탈 때에는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본격적인 라이딩 4년의 임씨는 매일 출퇴근 길에 만나는 농촌의 풍경과 농부의 모습, 들판의 4계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직업이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깊이30cm 정도의'표토'를 기름지게 하고 가꾸는 일을 하는, 농민이 제일 중요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김포는 아름답고, 또 슬픕니다. 4차선 국도의 개발지역을 지나다 보면 가끔 철거반과 지역주민들의 격렬한 싸움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임씨는 기록작업에 흑백사진을 고집하며, 필카를 사용하고 암실 작업도 직접한다.

“흑백사진은 색깔에 덧씌워진 화려함을 제거하고, 사물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게 하죠.”

필름을 현상, 인화하다 보면 조심스런 작업을 통해 진지하고 겸손한 마음가짐도 배울 수 있단다.

부인 김남희씨(42세)와의 사이에 임재관(17세,고2), 지관(15세,중3)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임씨는 자녀들에게도 자전거와 등산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눔과 상생의 지혜를 가르친다. 자잔거의 생활화를 위해 아들들이 자전거를 이용한 마일리지에 따라 용돈을 더주기도 한다는 것. 그는 이러한 교육과 가족의 화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부인 남희씨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라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그의 가족 4인은 모두 산악인이며 자전거 마니아이다.

두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와 함께 북한산을 찾아 암벽등반을 즐겼고, 설악산, 한라산 종주도 온가족이 함께 했다고. 또 자전거로도 작년에 제주도 일주를 했고, 지난 여름방학 때는 서울 속초, 속초 포항을 잇는 온가족 자전거 종주를 마쳤다.

경희의대 산악부 출신이며, 크로니클럽 멤버이기도 한 임씨는 주말을 자녀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당분간 등산을 접고 있지만 아들들이 20세가 되면 다시 등산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산은 마음의 고향이며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준 고마운 스승입니다. 자전거 또한 산과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사 수정 : 경희의대 산악부 출신  -> 경희의대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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