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여름 이야기(2)

다음날 아침. 빨래가 안말랐다고 제수씨가 건조기로 잔차옷을 돌리고 있는데 여지없이 비가 계속 옵니다. 부슬부슬....ㅠ.ㅠ  든든하게 아침밥을 먹고 출발을 하는데 지관이를 보내는 은영이의 눈길이 참 측은한 눈빛입니다.(휴우~~ 그래! 나는 참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구나. 사랑해요! 엄마-아빠!)  고맙다 친구야! 담에는 좀 보통의 방법으로 속초에 놀러올께. 매번 미안하다.  

뻣뻣한 관절을 억지로 움직이며 꾸역꾸역 출발을 하는데 정말 죽을 맛입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속초 시내를 통과하여 7번 국도에 들어섭니다. 잠시 뒤를 돌아 지관이가 잘 따라오나 뒤돌아 보는데, 아이구! 맙소사!  지관이가 검정 흙탕물을 완전히 뒤집어 썼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튀어도 깨끗하기라도 한데 부슬부슬 오는 비에 도로가 젖어 있으니 완전 흙투성이가 되어있었습니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지관아! 이게 뭐야?  흙탕물 엄청 튄다고 말하던지 좀 떨어져서 오지 그랬어?"

"시내를 통과하느라 정신도 없었고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뀔까봐 그럴 수가 없었어요."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저는 그저 아이가 길을 잘 모르니 내가 앞장서서 길을 알려주고 위험한 구간을 먼저 길을 터준다는 생각만으로 앞장을 섰고 그 잘난 앞가림 생색 때문에 뒤에 있는 아이는 구정물을 뒤집어 쓰고 있었던 겁니다. 속초 시내가 복잡하면 얼마나 복잡할 것이며 길을 잃어봐야 7번 국도로 들어서기만 하는데 뭐가 그렇게 못미덥고 마음이 급해서 그저 부모의 결정에 뒤를 따르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아이를 만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오더군요. 저는 좋은 마음으로 앞장을 섰지만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도 항상 좋지만은 않았던 거지요. 그래요. 세상에서 선의에 의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결국에는 그게 폭력이 되고 오히려 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 걸 종종 보면서도 설마 내가 그럴리가 없다는 자기확신이 이런 풍경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정도면 정말 괜찮은 부모라는 자신감이 문제의 시작이었어요. 한심한 꼰대같으니....)

아이의 미래가 불안하고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도대체 혼자서는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결국에는 내가 편하고자(불안감을 덜어보려고) 잘난체를 하면서 별것도 아닌 길잡이를 자처하며 뒤따르게 하고 있었던거였습니다. 좀 불안하고 비틀거리고 종종 길을 잃어도 결국에는 자신의 본모습을 찾을 것이고 자기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텐데 그걸 못기다리고 조바심을 내기만 했습니다. 조금만 더 느긋하게 뒤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제게 있었으면 좀 더 나은 길잡이가 되었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시부터 이미 땡볕이고 9시쯤 지나자 오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덥습니다. 비가 지겨웠는데 막상 땡볕이 내려쬐니 죽을 맛입니다. 원래 계획은 속초에서 200km를 달리면 삼척지나 울진까지 가야하는데 이미 모든 계획은 변경되었고 삼척까지라도 가면 다행이겠다 싶었습니다.


하조대


그늘만 있으면 어디든 쉬어갑니다. 주로 버스 정류장. 틈만나면 웹툰 삼매경에 빠지는 지관이.



속초부터 강릉까지의 7번 국도 구간은 정말 힘들고 재미없었습니다. 중간에 하조대에 들러서 사진찍고(군사시설이 대부분이고 정자도 없고 조그만 등대가 썰렁하게 있습니다) 정처 없이 달리다가 더위에 집중력이 떨어진 지관이가 갓길에서 턱에 걸려 낙차 사고가 발생!  깜짝 놀랐는데 다행스럽게도 도로에 차가 뜸해서 후다닥 일어나 살펴보니 무릎이 좀 까지고 발목에 상처가 생겨서 피가 흐르더군요. 갓길에서 땡볕을 받으며 물통의 물로 씻고 소독약 바르고 응급처치를 끝내고 나니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정말 잘하는 짓일까? 이러다 큰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어떻하지? 지금이라도 경포대 해수욕장에 가서 방잡고 비키니나 보면서 맥주나 마시다가 고속버스타고 서울로 돌아갈까?' 등등 수만가지 생각이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아빠의 복잡한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고맙게도 지관이가 "아빠! 제가 턱 넘어설때 싸이클 바퀴는 가늘고 잘 미끄러지니까 가능한 직각으로 넘어서야 한다는 걸 깜빡했어요. 몸으로 배웠으니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고고씽!" 하는 겁니다.

이후로 저는 앞장을 서다가도 잘 따라오는지 자꾸 뒤를 돌아봐야 했고 틈틈이 사진을 찍는 다는 핑계로 멈춰서서 기다리기도 했고 일부러 지관이를 앞장을 세우기도 하면서 모든 걸 챙겨야 했습니다. 갑자기 불안해졌던 거지요. 그랬더니 나중에는 하도 목을 돌려서 목과 어깨까지 근육통이 생기고 정신적으로 엄청 피로해졌습니다. (아! 이래서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조금이나 알겠더군요. 이대목에서 싱글맘, 싱글파 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컨디션이 너무 떨어져서 막국수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삼척에서 유명한 '부일막국수'에서 먹는게 목표였는데 이제는 모든 계획이 단순해집니다. 주문진 근처 막국수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나니 가까운 곳에 커피로스터로 유명한 박이추선생이 하는 '보헤미안'이 근처에 있다는 게 기억나서 일부러 지하차도로 유턴까지 해서 찾아갔건만.... 월요일은 휴무랍니다. 보헤미안 하우스 드립커피에 딸려나오는 토스트가 먹고 싶었던 지관이는 망연자실... 잠깐 누웠다가겠답니다. ㅠ.ㅠ




보헤미안. 우리나라 커피 로스터 1세대인 박이추선생이 운영하는 곳. 강하게 볶는 커피가 특색이고 사모님하고 펜션, 커피숍, 로스팅을 하는 집입니다. 이미 유명한 곳이지만 혹시 잘 모르시는 분은 주문진 근처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꼭 가셔서 진한 커피맛을 보시길.




강릉을 지나는데 네다섯명의 젊은이들이 주유소 앞에서 희안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유소 호객꾼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나름 열심히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었습니다. 버스휴게소에서 파워젤을 빨아먹으면 이 친구들을 히히덕 거리면서 구경을 하고 나니 힘이 좀 나더군요. (한 청년의 손동작이 꼭 DDR 동작과 비슷해서 둘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차를 얻어타고 동해 망상 해수욕장까지 간다고 하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쉽지 않아보였습니다. 아마도 우리 자전거가 먼저 지나갔을 겁니다.



히치하이킹하는 청년들. 젊었을때는 이런 걸 해도 귀엽죠. 늙어서도 이래야 하면 슬플거고.



강릉을 지나니 7번국도가 갓길도 넓어지고 한가해 지더군요. 모두가 새로 뚫린 강릉 - 동해 고속도로 덕분인데 새길이 뚫리기 전까지는 옛길이 명목상 고속도로 였습니다. 잠깐뿐이었지만 여행 기간중 거의 유일하게 갓길에서 나란히 수다떨며 달릴 수 있었습니다. 강릉에서 동해, 삼척으로 가는 길은 예전에 이쪽에서 봉직의 생활 할 때 엄청나게 많이 다녔던 길이었습니다. (물론 차로, 같은 길을 자전거로 달리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던 일.) 그때는 대관령 터널이 뚫리기 전이라 서울에 다녀오려면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구불구불한 대관령을 넘고도 또다시 한시간 넘게 달려야 삼척에 갈 수 있었습니다. 대충 기억에 터널이 두개 있었고 언덕이 상당히 많았다는게 어렴풋이 떠올랐으나 무조건 달렸습니다.



갓길이 넓죠?  가끔 만나는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여행자인 도보 여행자.(두번째가 자전거^^)   배낭에 옷걸이가 걸려있네요.










터널 통과하는 모습.

흥은택님이 쓴 글에 보면 자전거 도로주행의 급수가 있는데 1. 다리 건너기  2. 고가도로 건너기  3. 터널 통과 라고 했는데 전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터널은 일단 갓길이 없거나 좁고 엄청난 소음과 매연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최고의 내공이 필요합니다. 터널을 통과 할 때는 항상 지관이가 앞에 갑니다.^^  이번 여행에서  엄청난 수의 터널을 통과해서 고수의 반열에 올랐습니다만.... 아직도 터널 통과는 두렵기만 합니다.



차가 많지 않아서 오랜만에 잔뜩 긴장했던 신경을 누그려뜨리면서 라이딩을 했지만 강릉 동해 구간도 언덕의 연속이라 참 힘들었습니다. 옥계에 도착하여 다리밑에서 옥수수와 냉커피를 마시며 잠시쉬는데 지관이가 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문자를 못보내겠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보니 손에 힘이 빠져서 기어변속을 잘 못하는 일이.....



멀리 보이는 바닷가가 동해 '망상'해수욕장입니다. 동해영동병원에서 근무할때 여름이면 비키니 구경하러 자주 갔었죠. 떠나는 해 여름에는 아이들하고 텐트치고 놀기도 했는데...  해수욕장 앞을 지나는데 엄청난 비키니 물결에 잠시 정신이 혼미. 두 사내는 눈을 두리번 거리며 안구정화를 하고서 애써 떨어지지 않는 페달을 돌려서 삼척으로 달렸습니다.




동해에서 삼척은 아주 가까운 10km. 그러나 이 길도 업-다운의 연속입니다. 이름하여 낙타등 지형. 이제 마지막 고개만 넘어서면 삼척인데....  지관이가 부릅니다. 아빠! 펑크!   그래 왜 안오나 했더니 펑신 영접이군요. 출발전에 모든 튜브를 새걸로 바꾸고 펑크방지테잎도 넣었건만.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펑크는 이번뿐이었습니다.

마지막 고개를 넘어 삼척에 들어서니 마치 고향에 온것만 같습니다. 10여년 전과 그리 다르지 않은 거리를 달려 자전거샵에 가서 속초에 장갑을 흘리고 와서 한켤레 샀더니 친절한 사장님이 자전거 세차까지 시키주셨습니다.

숙소 잡고 샤워하고 빨래하고 저녁먹고 그대로 잠자고 싶었으나 '주륜야독'을 실천하고자 단어를 같이 외우려고 복사해온 단어장을 꺼냈더니 잉크젯 잉크가 다 번져있더군요. 역시 그냥 집어치라는 계시라 생각하고 꿈나라로 고고싱!!!






@ 여행 둘째날 결산 (8월 3일) : 강릉에서 삼척까지 120km 주행



About this entry


두 남자의 여름 이야기(1)

방학시작 할 때 짜는 생활계획표는 구할이 뻥이라 해도 해도 이번 휴가 계획은 너무나 황당했던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하루에 200km씩 자전거로 움직여서 서울에서 속초를 거쳐 7번 국도를 타고 삼척, 울진, 영덕, 포항, 경주를 지나 부산까지 가서 다시 대구, 청주를 거쳐 서울 돌아온다는 1000km 대장정을 5일에 끝내겠다는.... 아주 깜찍한 계획이었으니.... 선선한 가을도 아니고 서포트 카가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꼴랑 남자둘이서 폭염주의보가 내린 여름의 한중간에 보급차량도 없이 모든 짐을 등에 지고 이런 계획을 짠 사람은 분명히 경험을 하다말아서 '내가 해봤더니'를 연발하며 터무니없는 목표를 세우고 몰아치는 성과주의 꼰대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꼰대도 아무 막무가내 인간만은 아니어서 나름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었으니(사실 이런 자가 더 무서워요) 평소 그의 자전거 출퇴근 하는 거리가 90km인데 3시간 30분 정도 걸리니까(아침 6시 30분에 출발해서 8시 도착, 퇴근은 저녁 6시에 출발해서 8시 도착) 나머지 110km를 일과시간에 쉬엄쉬엄 가면 되지 않을까하는 나름 평범한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자출할 때는 맨몸으로 가능한 가벼운 자전거로 익숙한 길을 달리지만 처음가는 여행길을 그렇지 못할 거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거죠. 얼마나 자신감에 넘쳤냐하면 이 여행의 성공여부에 10만원 내기를 걸었습니다.(고2인 재관이와 ....같이 여행을 못가서 미안했지만 내심 당사자는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여행 계획을 이야기 했을 때 제일 의외인 것은 너무나도 순순히 함께 가겠다고 한 지관이였습니다. 한참 사춘기인 중딩이 꼰대와 자전거를 타고 4박5일을 달린다. 그 과정에는 협박도 없었고 당근도 없었죠.(설마 그런걸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겁니다.) 나름 뭔가 기대하는 것이 분명 있었겠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한 여름에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4박5일의 시간을 보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엄청나게 부러워합니다. 역시나 이런 여행은 대부분 자식가진자의 로망이었을까요? (아닌가? 나만 착각?)

준비물은 별게 없습니다. 자전거가 무거운 지관이는 물배낭만 메고 옷은 입은 옷에 여벌옷 1벌, 양말도 한켤레, 라이딩 도중에 먹을 이동식(파워바,파워젤), 똑딱이 카메라 2대, 필름똑딱이 카메라와 흑백필름 5통을 가져갔는데 1컷도 못찍었습니다.(너무 힘들어서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ㅠ.ㅠ)  옷은 자전거탈 때 입는 쫄바지(Bib shorts라고 하는데 레스링 경기복을 상상하면 됩니다.)만 가지고 갔고 Bib 안에는 피부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노팬티 이기때문에 숙소에서는 홀딱벗고 지내다 저녁먹으러 나갈때는 쫄바지에 져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아주 웃긴 풍경입니다.^^ (전라사진 나중 공개!!!)

다만 이렇게 젤로 더운 폭염 주의보의보가 내린 한여름에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과연 제정신인가? 라고 질문하는 분을 위해 답을 하면 1. 충분한 수분과 전해질을 공급하고  2. 적절한 자외선 차단 준비를 하면 큰 문제 없이 가능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중에서 최고의 땀샘을 보유하고 있어 수분 증발을 통한 기화열로 아주 효과적으로 체온을 조절 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는 달리기에 비해서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더더욱 효과적으로 땀을 증발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땀으로 소실 되는 수분외에 전해질을 공급하지 않고 맹물만 마시면 체내 전해질이 희석되어 '물중독증'을 일으킬 수 있으니 땀을 많이 흘릴 때는 전해질이 들어있는 음료수나 간식을 적절히 섭취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막무가내 무식한 계획은 절대로 아니었다는 말씀!!)





8월 2일 월요일 아침 6시 기상. 그런데 젠장알 비가 오고 있습니다. 밤새 시끄러운 비소리는 꿈이 아니었습니다. 속초까지 최소 200km를 가야하는데 비까지 오니 걱정스럽습니다. 양평까지 전철 중앙선을 타고 가서 160km만 타고 갈까하는 얄팍한 생각도 들었으나 출근시간에 자전거를 들고 전철에 타기도 미안하고 자전거를 타고 동쪽으로 서울을 벗어나 보지 못해서 그 경험을 포기하기도 싫어서 꾸물거리다 7시 30분에 출발. 다행스럽게도 집을 나설때는 비가 그쳐 가뜩이나 심난한 김여사에게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출발기념사진.  지관이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것 같군요.









비올때 헬멧안에 쓰는 모자입니다. 투명한 챙이 있어서 시야를 확보해 주면서 비물이 바로 눈으로 들어오는 걸 막아주고 뒤에는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천이 있어 흙탕물이 머리에 적시지 않게 해줍니다. 펄이즈미 제품이고 이번에 아주 요긴하게 썼습니다. 작년에 제주도 라이딩때 배운 경험입니다.



잠실을 지나



하남을 지나니 아예 무인지경입니다.


팔당대교를 건너니 바로 팔당댐입니다. 비는 계속.




양수대교 중간입니다. 두물머리라 경치가 좋을 텐데 비땜에 하나도 뵈는게 없네요.



속초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이런 4차선 도로의 갓길 주행입니다. 시끄럽고 재미없지만 나중에 개량된 7번국도를 달려보니 이정도 길은 아주 인간적인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양평 근처에 가니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로 내립니다. 번개가 떨어지면 카본인 내 자전거 하고 알루미늄인 지관이 자전거하고 누구한테 먼저 번개가 떨어질까 등등 쓸데없는 생각을 억지로 하면서 애써 정신없이 달리는데 이제는 아예 배수로가 넘쳐 갓길은 폭포수가 되어 흐르고 도저히 라이딩이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되어서 12시 30분에 해장국 집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습니다. 완전 물에 빠진 생쥐꼴이라 남의 영업점에 들어서기가 참 미안했는데 고생한다고 친절하게 잘 해주시더군요.

따뜻한 국밥으로 몸을 녹이면서 계속 라이딩을 해야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지관!  계속 갈 수 있을까? 비가 장난 아닌데. 어떻하지? " 하고 물으니... 중딩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슨 섭섭한 말씀이세요? 당연히 계속 고고씽이지요! " 하네요. 속으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녀석이 아직 고생을 덜 했구나. 그래 좀 더 달려보자고 결심하고 빗속을 하염없이 달립니다. 그러다 중간에 펑크 때우던 4명의 대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이 형아들이 중딩한테 추월 당하니 많이 속상한가 봅니다. 나름 열심히 용을 써 보지만 막강 중딩을 당할 수 가 없군요.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달리다가 홍천에서 강릉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아쉽게도 헤어졌습니다. 같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면 참 많은 위안이 되던데....  드디어 차차 비는 그쳤는데 인제 가까이 도착하니 170km를 달렸음에도 속초까지는 최소 40km 가 남았습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200km 라지만 이건 잠실에서 출발했을 때고 목동에서 잠실까지 20km가 추가 되었고 비가 온다고 꾸물거려서 출발시간도 40분 늦어서 이대로 계속 가면 최소한 2시간을 더 가야하는 데.... 이미 저녁 6시 30분.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시간!


앞쪽에 자전거 타고 가는 동지 발견!


이름모를 휴게소 화장실앞. 쪼끔 불쌍해 보이네요.^^




엄마! 아직 갈만해요. 히히





합강정휴게소에서 번지점프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속초를 포기하고 인제에서 자고 갈 건지 계속 달린 것인지 지관이 한테 물으니 또 정색을 하면서 계속 갈 수있고 다리도 가볍다고 합니다. 아니! 이녀석이 애비 몰래 산삼 뿌리를 먹었는지 힘이 넘치네요. 나중에 알았지만 이때 지관이 상태가 '러너스 하이'였습니다. 야간 라이딩은 안하려고 작정하고 왔지만 혹시나 몰라서 라이트도 준비했는데 그래도 다음날 일정도 있고 웬만하면 그만 달리고 싶었으나 자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계속 달려 인제터널 통과해서 번지점프대가 있는 합강정휴게소에 이르니 드디어(절대로 기다린거 아닙니다.^^)  지관이가 급격한 체력 저하로 GG를 외치고 맙니다. 이럴줄 알고 진즉이 속초 친구한테 이미 SOS를 쳐논 상태였으니....^^   잠시 뒤 친구 차를 타고 속초집에 도착.

"아빠! 차가 이렇게 좋은 거였어요? 가만히 있어도 막 움직이는게 엄청 신기하네요. "

"그래도 네 다리로 175km를 8시간에 왔으니 차보다 자전거가 더 대단하지."

멀리서 친구가 온다고 진수성찬을 준비해 논 친구가족과 즐거운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삼척에서 살 때부터 10년지기 친구고 지관이하고는 유치원 동창생) 은영이(큰 딸네미)가 묻습니다.

"아저씨! 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세요?"   - 이런 질문은 술꾼한테 왜 술을 먹느냐, 산에 가는 사람보고 왜 산에 가느냐는 것처럼 답이 없는 문제이지만 일반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한테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테니 나름 솔직한 대답이...

"음~~ 그러니까 ~~~  여자들한테 멋있게 보이려고 그런 것 같아"  - 철들고 나서 한 행동중에 구할은 그랬던 같은이 참 솔직한 대답입니다.

"헐~~~" (참 단순한 남자로구나.)

"어~~ 좀 이상한가?  그럼 맨날 같은 길로만 다니는 출퇴근 길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같아. 일상성의 반복에서 벗어나고픈 자아의 몸부림이라고나할까?"

"헐~~~"(첫번째 답이 차라리 나아요. 그런데 지관이는 무슨 팔자가 드세서 저런 아비를 만났을꼬? ㅠ.ㅠ)

이때 친구가 한마디로 자르네요.

"닥치고 술이나 먹세!"

힘든 하루였지만 친구가 좋고 술이 좋아 11시가 넘도록 수다를 떨면서 술을 마셨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지관이는 한시가 넘도록 수다떨고 노느라 안잤다네요)

@ 결산 : 서울 목동에서 인제 합강정 휴게소까지 8시간 주행에 175km.


늘씬 미녀가 된 소꿉친구 은영이.


About this entry


두 남자의 여름 이야기 - 여행 후기 개봉 박두






여행 후기는 다녀오자마자 끈끈하게 그 열기가 남아 있을 때 후다닥 써야하는데....

다녀와서 밀려드는 업무에 치여서 진도가 잘 안나갑니다.

우선 맛보기로 사진 몇장 올리고 차차 올리겠습니다.^^

-------------------------------------------------------------------------------

방학시작 할 때 짜는 생활계획표는 구할이 뻥이라 해도 해도 이번 휴가 계획은 너무나 황당했던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하루에 200km씩 자전거로 움직여서 서울에서 속초를 거쳐 7번 국도를 타고 삼척, 울진, 영덕, 포항, 경주를 지나 부산까지 가서 다시 대구, 청주를 거쳐 서울 돌아온다는 1000km 대장정을 5일에 끝내겠다는.... 아주 깜찍한 계획이었으니.... 선선한 가을도 아니고 서포트 카가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꼴랑 남자둘이서 폭염주의보가 내린 여름의 한중간에 보급차량도 없이 모든 짐을 등에 지고 이런 계획을 짠 사람은 분명히 경험을 하다말아서 '내가 해봤더니'를 연발하며 터무니없는 목표를 세우고 몰아치는 성과주의 꼰대였던 것이었습니다.

(중략)

" 언덕은 힘들어도 지루하지 않아서 좋은데 평지는 편해도 너무 재미없어요. " 

- 그래, 아들아. 네가 아직 어리다는게 여실히 느껴지는 구나. 편안한 지겨움 보다 힘들지만 재미있는 역경에 더 이끌리는 건 네가 그만큼 젊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거야.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그렇더구나. 우리는 파란만장한 이벤트를 매일매일 치르면서 살 수는 없단다. 그저 지루하고 변하지 않는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며 땡볕에 천천히 바스라지는 슬레이트 지붕처럼 늙어갈 뿐이다. 매일 같은 사람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길을 다니는 것 같지만 부드럽고 다정한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면 그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에 작은 물결이 일고 매번 다른 느낌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단다.(어쩌면 이게 진짜 비밀일지도 몰라) 우리를 지금의 나로서 있게 하는 것은 힘든 언덕을 힘들게 넘어가며 쌓은 내공도 일부가 되지만 탄탄한 바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작고도 작은 우리의 일상이란다. 천천히 변하는 풍경을 배경삼아 크게 숨차지 않게 페달을 밟으며 달리는 평지처럼 공기 같은 하루하루가 있기에 우리는 또다시 언덕이 앞길을 가로막아도 부드럽게 미소지으면 안장에서 일어나 '댄싱'을 할 수있는 거란다.  어느 누구도 일생을 안장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살아갈 수는 없단다. 그러니 힘들지만 신나는 '댄싱' 만큼 지겹지만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도록 하자. (후략)





About this entry



<< Previous : [1] :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 [103] : Next >>

Calendar

<<   2025/11   >>
S M T W T F S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