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끼다시 내 인생 - 달빛역전만루홈런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그 시대에는 모든 것이 새롭지만 친숙하며, 모험에 찬 것이지만 뜻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다. (루카치, 소설의 이론)
국민학교 때 길거리의 부랑자를 보고는 부모님께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지 않을 수 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부모님의 대답은 '공부 열심히' 였다지요? 자의식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부터 막연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대책없는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의 인생은 당연히 메인디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 하나하나도 다 같은 맘을 가지고 살고 있을거라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철이 들면서 모든 사람이 원하는 걸 이룰 수는 없다는 걸 알았지요.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요인은 '우연'이라는 것도요. 우선 큰 탈없는 유전자를 물려받아야 하고 그 유전자를 물려주는 부모가 어느정도 경제력이 있어야하는데 사실 이것처럼 우연히 일어나는 일도 없습니다. 물론 노력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연에 의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제가 과연 얼마나 이룰 수 있었을까요? 제가 가진 많은 것들이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 그렇지 못한 운이 없는 사람들에 미안한 마음을 한구석에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누구는 '루저'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그래요. 마흔 중반에 그런대로 이룰거 이루고 사는 제가 어찌 그 맘을 알겠습니까? 그나마 방구석에 쳐박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고 뭘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며 잠만자는(저는 한번도 해보지 못해서 그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사춘기 아이를 겪으면서 막막한 미래만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기하의 노래를 들었을 때 '장판이 난 지 내가 장판인지 구별'하기 힘든 삶을 비웃지 않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월급 때가 되면 로또를 사는 것 말고는 쥐뿔도 없는가장, 주식이나 펀드를 향해 부나비 처럼 달려들 수 밖에 없는, 대박이 없으면 인생역전을 꿈꿀 수 없는 그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기에 '달빛역전만루홈런'의 음악을 들었을 때 마음이 짠 했지요.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쓰고 노래까지 하는 1인밴드로 4장의 앨범을 남기고 떠난 이진원 - 달빛요정을 추모하며 소주한잔 마시렵니다.
스끼다시 인생이나 사시미 인생이나 결국 누구에게 먹히는 건 마찬가질 터이지만 당신의 노래를 많은 스끼다시들이 사랑했으니 잊혀질거라고 슬퍼하지 마시길.
잘가요. 진원씨.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447147.html)
절룩거리네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보석처럼 빛나던 아름다웠던 그대
이제 난 그 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아플 뿐인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깨달은 지 오래야 이게 내 팔자라는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허구헌널 사랑타령
나이값도 못하는게
골방속에 쳐 박혀
뚱땅땅 빠바빠빠
나도 내가 그 누구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놈이란 걸 잘 알아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아플 뿐인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지루한 옛 사랑도
구역질 나는 세상도
나의 노래도 나의 영혼도
나의 모든게 다 절룩거리네
내 발모가지 분지르고 월드컵코리아
내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20승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미친 게 아니라면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
요정은 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는 건 아냐
다 때려치고 어딘가로 숨어버리고만 싶어
아무리 버둥거려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그 알량했던 자존심을 버릴 때가 온 건 가봐
내가 세상을 비웃었던 것만큼 나는 더 초라해질 거야
아무래도 좋아 나는 내 청춘을 단 하나에 비쳤을 뿐
그저 실패했을 뿐 그저 무모했을 뿐
난 잊혀질 거야 지워질 거야 모두에게서 영원히
난 노래할거야 어디에서든 혼자서 가끔 이렇게 아무도 몰래
내가 세상을 사랑했던 것만큼 난 너무 아쉽고 섭섭해
아무래도 좋아 나는 내 젊음을
아낌없이 바쳤을 뿐
그저 실패했을 뿐 그저 무모 했을뿐
난 잊혀질거야 지워질 거야 모두에게서 영원히
난 노래할거야 어디에서든
혼자서 가끔 이렇게
요정은 간다 이제 요정은 없다
그저 그런 인간이 되어 노래하겠지 또 어디에서든
혼자서 가끔 이렇게 초라한 수컷이 되어
아무도 몰래 아무도 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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