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사진 : 한겨레신문)


오늘 새벽 아이폰4가 발표되었습니다. 미리 사전에 누출이 많이되어서 감흥은 떨어지지만 역시나 대단한 물건을 내놨더군요.

저는 애플은 매니아들만 사용하는 비싸고 디자인 예쁜 컴퓨터로 알고 있었고 4년전 큰아이한테 아이팟 나노를 사주면서 처음으로 itunes를 써보니 디자인은 깔끔하지만 뭐 이렇게 쓰기 불편한 MP3가 있나 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휴가에 제주도에서 열심히 자전거 타서 마일리지를 쌓은 작은 녀석이 아이팟 터치 3세대를 사면서 제대로 만져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엄청난 기계더군요.

네... 뭐 그렇습니다. 신상 핸드폰 안사고 일부러 장농폰을 구해서 쓰면서 지구를 생각하겠다고 큰 소리치던 제가 아이폰에 견디다 못해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애써 변명을 하면 한달반이나 버텼다구요.^^ 벌써 반년쯤 사용하고 있는데 거의 손에 붙어있다시피하는 핸드폰으로 최근에는 트위터까지 하면서 "아이폰을 얻었다. 그대신 아내를 잃었다. ㅠ.ㅠ"하는 농담처럼 되버릴 뻔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새 아이폰 소식이 슬슬 흘러나오면서 들락거리던 모커뮤니티에 전혀 듣도보지도 못하던 회사 이름이 흘러나왔습니다. 중국에 있는 컴퓨터 기판등 부품을 만드는 폭스콘이라는 회사 직원들이 자살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422869.html )  직원이 40만명이고 2교대로 일하면서 엄청난 물량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 회사가 만들지 않는 부품이 없으니 전세계 거의 대부분의 전자제품 회사들이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애플도 하청을 주고있었고 게시판에는 이것을 비난하는 글들도 올라왔고 일부는 자살률이 중국 평균보다 낮은데 뭐가 문제냐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게 문제가 되어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새 아이폰이 늦어지면 어떻하느냐는 글을 올렸다가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후속 기사를 보니 임금을 거의 100% 올려준다고 했다는데 올린 임금이 3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이러니 세상에 어떤 곳이 경쟁이 되겠습니까?  더군다나 임금을 올려주겠다는 CEO의 결정이 발표되자 이 회사의 주가는 떨어졌다고 하네요. 좀 이상하지요? 강제 수용소도 아니고 제발로 걸어들어와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임금을 받는 공장에서 연달아 벌어지는 자살은 무엇이며 직원의 복지를 위해 임금을 올려주었더니 수익이 떨어진다고 회사의 주가가 떨어지는 이 무서운 시스템이 '자본주의'인 것이죠.

여기 지구한쪽 구석에 이전보다 4배가 해상도가 올라가고 두께도 24%나 얇아지고 배터리가 40%가 늘어나고 화상채팅도 되는 놀라운 기계를 사고 싶은 젊은이가 있습니다. 저쪽 지구 한쪽에서 옆자리의 동료 이름도 모르고 로봇처럼 일하는 농민공출신의 젊은이가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 관계도 맺지 못했을 이들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의해서 어처구니 없게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야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도 없겠지요. 아디다스의 축구공을 만드는 어린이 노동 착취도 있고 ... 삼성의 기흥 공장에서 유기화학물에 중독되어 (물론 회사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젊은 나이에 백혈병등 혈액암으로 죽었거나 투병하는 노동자가 30여명이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지금은 리콜 사태로 망가지고 있지만 전 세계를 석권한 도요타도 어용 노조에 언론사를 구워삶아 나쁜 기사는 하나도 안 실리는 회사라고 합니다. 이 회사도 알져지지 못한 엄청난 수의 자살 노동자가 있다고 하네요. (도요타의 어둠 참조)

저는 그저 새 물건을 싸게 사고 싶었을 뿐이고 제가 산 주식이 올랐으면 좋을 뿐이었고 회사는 더 많은 수익을 내서 주주들의 구미에 맞추고 엄청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했기에 비용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싼 나라에 하청을 주었을 뿐인데 저쪽 반대쪽에서는 저임금과 노동 착취가 생기고 거기서 죽음을 일으킨다는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  "싸고 좋은"이라는 모순된 욕망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이 현실....

몇년 후면 제 아이도 자라서 전문직이나 공무원이 되지 못하면 노동자가 될것이고 이 빼도박도 못하는 시스템에 노동력을 팔아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야 할텐데 참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유태인을 죽음의 공장으로 몰아넣은 아이히만은 짐승도 괴물도 아닌 아주 정상적인 사고와 상식을 가진, 그저 자기 성취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근면 성실하게 이행한 중년 남자였다고 합니다. 다만 그의 만행은 유태인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주어진 임무만 수행하는 철저한 '아무생각 없음'이 원인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했습니다.

화엄경에 "인드라망의 구슬" 이야기가 나오는 데 인드라의 하늘(제석천의 하늘)에는 그물망이 하늘을 덮고 있는데 여기에는 무수한 구슬이 달려있다고 합니다. 이 구슬들은 다른 구슬 하나하나를 비추고 있고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 하나가 흔들려 소리를 내면 다른 구슬도 서로 빛을 내면서 어우러져 소리를 내는데 그물에서 떼어낸 구들은 아무런 빛도 없는 구슬이 된다고 합니다.

잡스의 말대로 고져스한 아이폰, 아이패드가 눈앞에 있습니다. 이런 기계를 만들어내는 참으로 대단한 시스템을 칭송하기만 한다면 아이히만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될거고, 인간의 사유는 저절로 커진 뇌의 부산물이 아니고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최소한의 의무사항이라는 겁니다. 예전에는 그저 근면하게 일하고 밥먹으며 살면 되었지만 전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이 시대에는 끝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긴고리 끝에 달려있는 약자를 생각하는 슬기로운 소비자가 되지 못하면 언제가는 그 그물이 나의 삶까지도 조여오고야 말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자진해서 뛰어들어 죽어라 헤메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이쪽 구슬이 반짝 거릴 때 저쪽 끝의 구슬도 함께 반짝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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