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김포 누산리, 2009. 4, gelatin silver printing
작년 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무렵.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던 김포 누산리 샛길로 페달을 밟았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는데 가뜩이나 바쁜 아침에 그쪽으로 왜 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마 뭐에 홀렸던거 같은데...
길옆에는 얼마전 베어진 나무가 한그루 쓰러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눈이 어두운 저로서는 무슨 나무인줄 몰랐습니다.
길옆 좁은 텃밭에 나무 그늘이 거슬렸던지 밑둥을 삭둑 톱질을 했는데....
아뿔사! 껍질 일부분이 아직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었던 겁니다.
밑둥이 거의 잘려진 나무는 마지막 온힘을 모아 꽃을 한가득 피워올렸습니다.
자신의 죽을지 아는지 모르는지
죽음을 앞둔 나무가 가득 피워올린 풍경앞에서 한동안 먹먹하게 서있었습니다.
생명이란...
이다지도 무모한지
어떤 틈에서도 어떤 핍박에서도
끝까지 부여잡고 움켜쥐는 저 절박함....
슬프고도 청승맞은 강허달림의 노래가 흘러갔습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나서 참 슬펐어요. 생명체란 유전자가 자신을 증식하여 퍼뜨리기 위한 포장재에 불과하다. 그저 맹목적으로 교미하고 수태하고 태어나고 기르고 죽어간다. 어찌보면 냉냉한 진실인데 어쩌면 항상 진실이란 이다지고 팍팍하고 황량한지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게 싫다고 거짓 희망을 만들어 살아가는 건 더 비참해지니까요.
묵묵히 굴종하며 살지만 작은 틈을 비집고 나와 결국에는 큰 바위가 갈라지는 것도 생명이니까요.
막막한 어둠 속 별빛들 한없이 바라다보며
목 놓아 갈망하기도 하고
사무치게 그리워 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이유들로 가득 찬 불안한 눈빛에
누구의 손길도 마음도 쉽지 않았을 테지
참 무모해 무모하다 못해 절박하지
제대로 산다는 건
일어나 일어나 천천히 일어나
나 살아 숨 쉰다고
꿈틀거리던 하얀 자국 선홍빛 기억 또렷이 남아
스스로를 옭아매고
또 누군가에겐 상처를 주고
채울 수 없이 멀어져 간 끝 모를 사랑도
가슴 속 바다 한 가득
아련함이었을까
참 무모해 무모하다 못해 절박하지
제대로 산다는 건
일어나 일어나 천천히 일어나
나 살아 숨 쉰다고
한 없이 아늑한 바람의 소리
흔들림 없는 꿈의 소리
작은 숨결에 몸사위에
세상은 소통을 하지
손 내밀고
감싸 안고
전해오는 체온들
아직 희망은 있고
모두 사랑이었으니
(강허달림, 옛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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