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식(인성의원 원장)

임성식 원장.
인터뷰는 진료실이나 카페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임 원장은 당시 인터뷰 장소로 자신의 집을 지목했었다. 어떤 책을 읽는지 알려면 책장을 봐야 한다며.
그의 집에 들어섰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걸린 자전거 몇 대였다. 그리고 넓은 거실 한 쪽에는 토종물고기가 사는 어항이 있었고, 한쪽 벽면에 천정까지 닿는 거대한 책장이 있었다.
그가 특이한 책들을 보여주는 사이, 그의 아내가 과일과 차를 내왔다. 주지스님의 방에 있음직한 원목 차탁에 깔끔하게 놓인 과일과 차, TV없는 거실, 밝은 집안. 정신적인 여유가 느껴졌다.
웬만큼 잘 사는 사람들조차 먹고살기 바쁘다며 강파른 표정 일색인 우리나라에서 느끼기 쉽지 않은 ‘여백’이었다고나 할까. 임 원장을 이 코너의 첫 번째 주자로 선택(첫 선택은 어쩔 수 없이 기자가 했다)한 것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여백’에 대한 인상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그 여백은 6년간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비 내리는 홍익대 거리에서 만난 그는 6년 전 만났을 때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이었을까, 홍대라는 공간 때문이었을까.
그는 사진공부 모임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홍대를 찾는다. 한 달간 찍은 사진 중 다섯 장을 인화해오는 것이 과제다. 조만간 사진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고.
“목동에서 강화에 있는 병원까지 자전거 출근을 하거든요. 익숙해지고 나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정말 멋지더군요. 그래서 찍기 시작했죠.”
그가 찍는 것은 갓길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과 사물들이다. 인도도 없는 국도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란 차도 없고, 대중교통 이용도 원활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열외’인 이들이었다.
몇 십년간 국도 갓길을 걷는 사람들을 봐왔지만 자전거를 탄다는 이유로 갓길로 밀려나서야 그들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은 마음이었다고.
“갓길인생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고 도로변 풍경을 찍죠. 아파트 공사 현장 등 황량하고 가슴 아프고 슬픈 풍경이죠. 조금씩 개발되어가는 변두리의 모습. 원래는 작년 겨울 쯤 전시회를 하려고 했는데 사진을 ‘강매당할’ 분들께 죄송해서 좀 더 좋은 사진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판매 대금은 다 기부할 생각이고요.”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함민복 시인에게 갓길인생 얘기를 했더니 흥미를 보여서 얘기가 잘 되면 임성식 사진에 함민복 글로 마무리된 사진전으로 진행될 수도 있단다.
내가 달리는 만큼 세상은 좋아진다
그가 하는 자전거 출근은 일종의 운동이다. 육체적 운동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운동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탄 거리만큼 마일리지를 적립해 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공부방에 보내는 비용에 보탠다. 워낙 열심히 하다 보니 다른 지인들도 그가 달리는 거리만큼 성금을 보내주곤 한다고.
“젤 힘든 게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나올 때인데요. 그냥 차타고 갈까 싶은 생각도 많이 들죠. 그래서 이런 일은 지속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해요. 제 경우는 오늘 달리면 얼마가 적립된다, 내가 안 하면 공부방에 갈 돈이 줄어든다는 게 압박인 거죠.”
자전거 출근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도 얻었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향해 빵빵거리는 차들과 삿대질하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속으로 생각한다.
‘아, 미안하다. 바쁜데 길을 막았구나, 내가 비켜줄게.’
아내나 아이들도 그의 이런 취미 생활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준다. 온가족이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을 한 적도 있다(그 덕분에 아내는 이제 자전거는 타지 않게 됐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아내와 의견이 맞아요. 세상에서 소통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배우자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참 많거든요. 안타까운 일이죠. 얼마 전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아이들이 편지를 써줬어요. 나중에 닮고 싶은 어른은 엄마 아빠밖에 없다고. 감동 받았죠.”
덜 미안하려면 더 열심히 살아야
“개원의지만 심장초음파, 내시경 같은 전문 진료도 다 하니까 일이 지겹지는 않은데, 좀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작은 애가 대학 가면 1년 휴가 내고 와이프와 자전거 유럽 여행이라도 갈까 생각 중이예요. 가다가 좋은 데 있으면 오래 머물기도 하면서. 그런 얘기를 병원에서 내비췄더니 난리가 났어요. 말도 안 된다고, 하하.”
그래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다들 병원과 집밖에 모르는데 그는 자전거, 사진, 레고 조립, 커피 로스팅, 스카치위스키 동호회까지 다양한 활동을 한다.
“혼자 잘난 척 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다고 저도 똑같이 집, 병원 할 수는 없잖아요.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른 거니까요. 사실 이런 시대에 저만 이렇게 재미있게 살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 사는 게 되게 재미있거든요.”
기부 마일리지 적립을 위한 자전거 타기 같은 이벤트를 하는 것은 나 하나의 기부보다는 주위 사람들도 함께 사회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다.
“뭘 시작하면 3년은 하거든요. 특히 좋은 일은 주변 사람들과 즐겁게 꾸준히 하고 싶어요. 앞으로 그런 일을 좀 더 꾸리고 싶어요. 그래야 내가 세상에 좀 덜 미안하지 않을까 싶어요.”
2004년 그와의 첫 인터뷰에서 임 원장은 ‘조르바처럼 사는 것이 목표’라고 했었다. 그의 목표는 이뤄지고 있는 중일까?
조르바가 타고난 자유인이라면 임 원장은 자유롭게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인 듯하다. 타고난 자유인으로 살기에는 발목을 잡는 것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니 말이다.
임성식 원장이 부러운 사람은?

홍성수 (연세이비인후과 원장
그런데 굳이 꼽자면 홍성수 원장님이예요. 저는 진보신당 당원인데, 홍 선생님은 아마도 한나라당 지지에 가까울 거예요. 의료계에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홍 선생님은 때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얘기가 되거든요.
손아래사람과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고, 선배 대접에 연연하지 않는 게 참 대단한 거죠. 저도 그 나이쯤 되면 그렇게 되고 싶어요.
또 얼마 전에는 그룹사운드에서 드럼을 시작하셨다는데, 저는 그런 ‘노는’ 취미는 해본 적이 없어서 그게 또 부럽더라고요. 홍 선생님은 저만 보면 ‘몸 좀 그만 혹사시키라’고 하시는데, 하하. 홍 선생님께 안부 전해주세요!”
김민아 기자 licomina@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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