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휴가, 새 공부
올 겨울은 춥기도 춥고 눈도 참 많이 왔어요.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탄게 작년 12월 23일 동지였습니다. 캄캄할 때 출발했는데 도착해서도 해가 느릿느릿 떠올랐지요.
그리고 나서는 춥고 눈오고 춥고, 춥고.... 손발에 바르는 열나는 로션까지 준비했지만 도저히 자전거는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바퀴가 아주 가늘고 쉽게 미끄러지는 도로 자전거랍니다. 물론 싸이클 크로스라는 험한 길을 달리는 바퀴로 교체하면 가능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출퇴근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야했기에 자전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최소 1년간 자가승용차를 사용하지 말아보자는 결심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신목동역에서 9호선을 타고 공항시장역에 내려서 송정역까지 걸어가서 강화행 직행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걸리는 시간은 자전거와 비슷하게 1시간 40분 정도 걸립니다.(정말 자전거는 놀랍습니다)
그동안 뒷바람을 타고 편하게 살아서인지 이런게 먼 거리를 출퇴근 하기 시작한게 3년전 처음이고 그나마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녀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서 하루에 3시간 이상 시달려야하는 많은 분들 (주로 인천지역에서 서울로 출퇴근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요)께 좀 미안하지만 저는 반대쪽으로 다녀서 매일 앉아서 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조금 일찍 서두르기만 하면(자가용 보다 20분만 더 일찍 나가면 됩니다) 지하철에서 음악듣고 책읽고, 버스타면 또 책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대부분은 아주 곤하게 잠을 자면서(분명 버스 의자에 잠이 오게하는 특수 장치가 달려있는게 분명합니다.^^)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약간 특이한 유소년 시절을 보내서(초등학교 4학년 부터 농사지으시는 부모님과 떨어져 유학) 공부에 대해서 대단한 압박감에 시달리며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다들 워크맨이 유행할 때도 한가하게 음악을 듣는 다는 건 생각도 못하고 지내서 아는 음악이라곤 중학교때 충격받은 '산울림', 고3때 담임선생님이 추천해주신 클래식 몇곡, 군의관 시절 유니텔 클래식 동호회에서 알게된 비틀즈, 퀸이 전부였습니다.
이러던 제게 갑자기 아침,저녁으로 맘대로 쓸 수 있는 3시간이 생겼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중년 아저씨에게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3시간'이라니..... 당장에 음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인터넷 강의 듣으라고 사준 헤드셋을 끼고 다니면서 우선 '밥 딜런'하고 '조니 미첼'부터 들었습니다. 얼마전 본 영화 '들오리와 집오리의 코인 락커'에서 주인공이 흥얼흥얼 대는 노래가 나오는데 그게 바로 그 유명한 'Blowin' in the wind'였습니다.(물론 놀랍게도 모르던 노래였구요^^), 크리스마스면 피할 수 없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살짝 바람난 남편이 부인한테 선물하는 CD가 조니 미첼의 'Both side now' 였기에 어떤 음악인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대중음악이라도 아무런 지침없이 이 거대한 분야에 홀몸으로 뛰어들었으니 당연히 어디가 어딘지 정신이 없었습니다. 밥 딜런만 하더라도 앨범이 마흔장이 넘고.... 그러다가 아주 좋은 나침판을 발견했는데 바로 " Paint it Rock" (남무웅) - 재즈 평론가가 그린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였습니다. (저자는 Jazz it Up이라는 재즈 만화도 그렸습니다)
밥 딜런은 다 포기하고 초창기 앨범 3개만 들어보기로 했구요. 3월말에 딜런 형님이 내한 공연을 오신다는데....
롤링스톤지에서 뽑았다는 500대 명곡하고 배철수씨가 골랐다는 100대 명반 목록을 기초로 듣고 있는데 이거 재미가 삼삼합니다. 에릭 크립튼이 조지 해리슨의 부인이었던 패티 보이드에게 반해서 썼다는 Layla를 들어보니 과연 이정도 곡을 남긴다면 남의 마누라를 뺐었어도 용서해 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딥 퍼플의 Highway star를 듣고는 바로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니 모두 열광합니다. 서로 자기 MP3에도 넣어달라고 하고...
이제 겨우 발을 조금 담갔을 뿐인데 안타깝게도 겨울은 가고 봄이 오고 있으니 휴가도 곧 끝날 것이고 다시 잔차타고 달리는 노가다가 기다리고 있으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차에서 읽은 책들 소개는 나중에....)
* 이 가수한테서 이 앨범을 놓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음반이 있으시면 가차없는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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