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산성 답사기
명박산성(明博山城)
광종(狂宗) (연호:조지) 부시 8년(戊子年)에
조선국 서공(鼠公) 이명박이 쌓은 성으로 한양성의 내성(內城)이다.
성(城)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당시 육조거리에 막아놓은 기대마벽(機隊馬壁)이 백성들에 의해 치워지매,
그에 대신하여 보다 더 견고한 철궤로 쌓아올린 책(柵)에 불과하다.
이는 당시 서공(鼠公)의 사대주의 정책과 삼사(三司:조선,중앙,동아) 언관들의 부패를 책하는 촛불민심이
서공의 궁(宮)으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 만든 것이다.
무자년(戊子年) 유월(六月) 패주(敗主) 두환을 몰아낸 일을 기념하여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한성부 포도대장 어(魚) 아무개의 지시로, 하루 밤낮만에 쌓아올려져서 길 가던 도성의 백성들이 실로 괴이하게 여겼다.
한편으로는 그 풍경을 관람코저 모여든 백성이 그 머릿수를 헤아리매 팔만(포도청 추산)이 넘어, 도성 내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도 전한다. [출처:불명]
생일이라고 미역국(물론 쇠고기넣었습니다. 그래도 생일인데^^)에 흰쌀밥으로 저녁을 먹고 케익을 자르고 선물(자우림 7집 받았습니다)받고 부랴부랴 시청으로 나갔습니다. 버스로는 근처까지 접근하기 힘들것으로 생각되어 당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렸습니다. 몇번출구로 나가야 이순신동상에 가까운 곳으로 갈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시청앞광장으로 가려면 10번 출구로'라는 안내문을 붙여놨더군요. 그런데 10번 출구로 나가니 제일 먼쪽 출구였습니다. 그러니까 촛불행렬의 맨 꼬리에 붙은거죠. 어서 명박산성을 보고 싶은데 촛불행렬과 느릿느릿 가려니 답답하더군요. 대학생들이 각자의 소속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무리와 함께 가는데 '학점 지못미'라고 쓴 푯말을 든 학생, 아이업고 유모차 끄는 엄마들부터 두 딸아이를 번갈아가며 목마태우는 아빠, 뾰족구두에 등이 흠씬 파진 옷을 입은 참으로 고마운 아가씨,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서 구호를 외치며 느릿느릿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어쨌거나 앞이 막혀있는데도 앞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며 수다를 떨며 가는데 동아일보,조선일보 사옥을 지나니 멀리 이순신 동상이 보이더군요. 한참을 움직여서야 드디어 명박산성 앞에 섰습니다. 사람들이 기념사진찍고 정말 대단한 발상이라고 신기해 하더군요. 하루종일 종종거리느라 힘들다는 김여사 때문에 오래있지 못하고 서대문쪽으로 발을 돌려 행진을 하다가 고가도로위에서 경찰청으로 행진하는 사람들 구경하고 슬슬 걸어서 충정로에서 전철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1년전 6월에 겁이 많아 몇번 나가지 못했지만 명동앞 대로에서 발 앞으로 굴러온 사과탄에 깜짝 놀란 가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는 어찌나 무서웠던지... 백골단도 무서웠고, 최루탄도 무서웠고, 잡혀가면 호적에 빨간줄치고 유급당하고 인생 종칠까봐 무서웠습니다.
어쨌거나 아이들 손잡고 아무 두려움 없이 정권퇴진 구호를 외치며 행진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경험입니다. 아이들은 잘 모르겠지만요. 이전 세대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나은 세상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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