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법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 큰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번의 삶,을
잘 넘길 것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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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세월아.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 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수 있는가,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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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이런 시가 이제 자연스레 읽히는 나이가 되었다

아름다워라 세월이란...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젊은애들,

뒤돌아 보게 되지만

되돌아 가고싶지는 않다


시간아! 박차를 가하자

어서어서 달려 아직도 뜨거운 피좀 식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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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꽃 피었다

꽃과 가시가 한 어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글을 읽는 동안

지금은 다른 몸이 한 몸에서 갈라져나온 시간을 생각하는 동안

꽃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가시를 품는 것이라는 것을 새기는 동안


꽃이 오셨다


어쩌지 못하고 물외처럼 순해지며 아픈 내 마음이여

줄기와 잎이 가시로 덮였어도 외꽃처럼 고울 그대에 대한 생각이여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몸의 그리움을 마음의 그늘로 염하는 시간이여


(이대흠, 귀가 서럽다, 창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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