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의미

'고전'은 영어로는 classic 인데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형용사이며 처음부터 '고전적'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클라시쿠스'는 사실 '함대'라는 의미를 가진 '클라시스(classis)'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클라시쿠스'라는 형용사는 로마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국가를 위해 군함을, 그것도 한 척이 아니라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부호를 뚯하는 말로,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가리켰다.

덧붙여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식-자식은 '프롤레스(proles)'라고 한다-밖에는 내놓을 게 없는 사람, 국가에 헌상할 것이라곤 프롤레스뿐인 사람을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라고 불렀다. (중략)  오늘날 '클라시쿠스'는 '고전적', '프롤레타리아'는 '노동계급'을 의미하는 말이 되어 이 두 단어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옛 로마 문화에서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단어였으며, 생각해 보면 '프롤레타이우스'라는 형용사는 서글픔이 깃든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가적 위기에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상황을 인간의 심리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언제든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러한 인생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책이나 작품을 가리켜 '클래식'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단테 신곡 강의 : 이마미치 도모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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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는 생명수를 찾았을까?


























어제 저녁 저희집 거실에서는 역사적인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름하여 '가족 독서토론회'

일주일 전에 책을 하나씩 선택하여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저희집에서 가장 큰 체벌인 '세 대 엉덩이 맞기'(때리는 강도는 제 감정에 달려있지만 횟수는 3회를 넘기지 않는다)로 정했습니다. 요즈음 너무나 만화책만 보고(물론 각종 만화책을 사다 나르고 빌려오는 부모가 공급책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책을 읽지 않아서 내린 특단의 조치였습니다.

지관이는 얍삽하게 제일 얇고 쉬워보이는 '크리스마스의 비극'이라는 추리동화책을 골랐고 재관이는 황석영의 '바리데기', 저는 '인간없는 세상', 김여사는 '나무 위 나의 인생'을 골랐습니다.

예상했던대로 뺀돌이 임지관은 끝까지 책을 읽지 않고 개기다 몸으로 때우려는 걸 폭력과 독서토론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와서 다음주에 책 한권을 더 읽어 오는 걸로 벌칙을 바꿨습니다.

재관이가 바리데기의 줄거리를 말하는 어찌나 조리없고 두서없이 말하는지 참으로 답답했는데(여자친구가 있다고 상상하고 말해보라고 하니 좀 나아지더군요.^^) 맨 마지막에 하는 말이 바리가 생명수를 찾았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저는 바리가 생명수를 찾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소설을 감동깊게 읽었으나 나중에 실망을 했거든요.(역시나 우리에게는 희망은 없구나.) 하지만 재관이는 바리데기가 자신과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받아들인것이 생명수를 찾은거라고 말했습니다. 생명수를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저의 생각이 짧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관이는 이야기를 듣더니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나쁜 생각을 안하고 죽지않고 견딜 수 있는지 신기하다고 하고 김여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울화가 치밀어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일주일 뒤에 또 한권의 책을 읽어오고 이번에 읽은 책은 각자가 독후감을 한장씩 써오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는데 상당히 뿌듯했습니다. 그동안 말로만 아이들과 이야기해야겠다고 해오다 처음으로 해보니 재미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가능하면 '꼰대'들은 뒤로 빠지고 아이들이 많은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자리가 되면 더더욱 좋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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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최근에 놀랍게도 이 책을 읽었다. 800페이지가 넘고 무게가 1.3kg에 달하는... 내 전공과 전혀 무관한 학술서적을 읽었다는 거에 스스로 기특함을 느낀다. 워낙에 잡스러운 호기심을 자랑하는 데다가 자신을 출판계의 수호신이라고 착각하고 사는지라 작년에 이책이 출간되었을때 '이런 책은 사주어야'하는 심리가 작동하여 바로 구입하려다 이미 두줄로 채워져있는 서가의 책장들의 아우성에 카트에서 일년간이나 숙성상태로 있다가 구제되었다.(갑자기 구제된 이유는 회사원/철학자라는 강유원씨가 운영하는 armarius.net에 놀러갔다가 그렇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는 국민학교때부터 주입되어 온 대로 적화통일 야욕에 불타는 북한괴뢰 도당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아마도 일요일이었지?) 갑자기 쳐들어 왔다고 알고 있었다. 뻔뻔스럽게도 북괴는 우리가 북침을 해서 어쩔 수 쳐들어 왔다고 주장한다고 알고 있었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이런 인식에 새로운 틈이 생길 자리는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기회에 브루스 커밍스라는 미국인이 쓴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이 있는데 기존의 주장(전통주의)에 반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본 책이라고 들었다.(수정주의)

이 미국인이 다양한 노획문서와 비밀해제문서를 수년간 노력해서 이 책을 발표했을 때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의 주장은 상당한 음모론이 들어 있지만 북의 남침은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유도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중학교 때 일본에서 살다온 짝궁이 보여준 평양 사진에 놀랍게도 아파트와 머리에 뿔이 없는 정상적인 사람들을 본 뒤로 제도교육에 미심쩍다는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동족상잔의 내전(한국전쟁의 정의를 '내전'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다칠 수도 있다.)에 이러한 깊은 뜻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배운것만으로도 대단한 경험이었다.(미안하지만 커밍스의 책은 읽지 못했다)

이 책은 저자와 선임 연구자들의 엄청난 수고로 탄생된 책이다.(어느 책이던 많은 수고가 들어갔겠지만)  전쟁 전후에 있었던 많은 문서들이 비밀 해제되었는데(러시아어,영어,한국어) 이 문서들이 연구되었고 전쟁중에 미처 없애지 못하고 노획된 북한-소련문서들이(노획문서-죽기전에 이상한 문서들을 잘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비밀 해제되어 몇년간을 문서에 파묻혀 지냈다고 한다.

약간 아쉽지만 한국전쟁 전체를 아우르는 책은 아니며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들(38선에서 있었던 수많은 분쟁들)을 미세하게 추적하여 그 당시의 상황이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로 서술되었다.(길지만 잘 읽히는 이유)  물론 이 책도 다른 한국근현대사책들과 마찬가지도 읽다보면 울화가 치민다.(식민지의 인민들은 모두 같은 심정이겠지만) 소련과 미국에 의해서 정말 아무생각없이(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연구했겠지만) 쭉 그어버린 38선(옹진반도는 38선 이남에 있지만 육로는 차단된 섬이되었고 이런 특성으로 많은 분쟁이 있었다), 그 양쪽에 적대적 정부의 수립(2차대전때 함께 일본과 싸웠던 두 진영이 어찌 그렇게 급속하게 냉전으로 갔을까?), 조만식-김구등의 통일주의자들의 눈물나는 실패와 암살, 계속되는 혼란과 양측의 공작(물론 북쪽의 공작은 상당부분 성공했고 남쪽의 공작은 지지부진했다), 49년에 엄청난 남쪽 도발의 38선 분쟁, 수세적이면서 속으로는 착착 전쟁을 준비한 북쪽의 치밀함(이에 비해 무뇌아적 행태를 보인 이승만 정권), 전쟁 직전의 남북한 전력비교(거의 비슷하거나 북쪽이 약간 우세했다고함),....


그래서 과연 누가 먼저 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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