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를 수 없는 나라 (원제 : Annam 安南)

(줄거리)
일단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18세기 베트남을 향하여 배를 타고 떠난다. 마음 착하고 신앙심 깊은 이 여자 남자들은 미지의 땅을 찾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들은 일 년이 넘게 걸려서 비로소 사이공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 그들은 남쪽 지방의 농사꾼에게 복음을 전파한다. 그런데 한편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는 동방으로 떠난 선교사들을 까맣게 잊고 산다. 선교사들은 그동안 모든 것을 버렸고 모든 것을 다시 배웠다. 베트남은 특유의 습기와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그들을 모두 딴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그 땅에서 살고 죽는다. 그들은 하느님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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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은 복음서를 경청했다. 그리고 여전히 계속하여 그들의 옛 신들을 믿었다. 베트남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은 채 다 간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영원속에서 한데 뒤섞였다. 존재들은 논 위를 불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지나갔다. 논에 심어놓은 벼가 그 즐거운 푸른색으로 허리를 굽혔다.


지아라이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령들이 가득 깃들어 있는 어떤 세계를 믿었다. 만물 속에 신이 있었다. 저마다의 존재는 비록 생명이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씩의 영혼을 지니고 있었다. 이 베트남 사람들은 얌전하고 조용했다. 참을성 있는 그들은 표지 하나하나 속에 깃든 우주를 섬겼다. 달이나 바람처럼 비가 그들에게 말을 했다. 선교사들은 그들에게 머나먼 전설들이이 살아 숨쉬는 한 권의 책을 소개했다. 전설들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의 신들은 믿기 어려운 것이면서도 마음에서 가까웠다. 신들은 잎사귀 하나하나를 떨게 했다. 여러 가지 표지들이 그 베일을 벗고 나타나는 어떤 여름밤이면 마을은 행복한 신음 소리로 수런거렸다. 남자와 여자가 우주에 하나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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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닌 수녀는 베트남 중부 산간지역의 지안라이족이 사는 곳에 이르른다. 그들은 기나긴 여행끝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두 남녀의 모습으로 끝맺어진다.


그들은 벗거벗은 채 서로 꼭 껴안고 잠들어 있었다. 남자는 젊은 여자의 젖가슴 위에 손을 얹어놓고 있었다. 여자의 배는 땀과 정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을 했던 것이다. 깊은 정적만이 깃들어 있었다. 군인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였다. 육체를 사로 나누는 법이 없이 눈이 매섭고 말씨가 공격적인 남자들과 여자들을 찾아내게 될 줄로 기대했던 것이다. 성직자들의 태연하기만 한 모습과 창백함에 군인들은 감동핬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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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문체에 여백이 많은 짧은 소설. 하지만 이 깊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스물한살의 청년이 썼단다.
아! 정말 놀라운 처녀작이다.

바람이 불면 훌훌 날아가 버린다는 안남미에서나 알고 있던 안남이라는 나라. 남쪽의 평안한 이곳을 얼마나 많은 왕조와 서양의 나라들이 침략했는가.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논을 일구고 사랑을 하고 풍경을 만들어 갔다. 결국엔 중국도 프랑스도 미국도 다 녹아들고 말았다. 네이팜탄과 에이젼트 오렌지로 범벅을 만들어도 빼싹마른 그들은 땅굴속에서 끝내 이기고야 말았다.

그들이 자본에도 꼭 이겨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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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 정유정, 은행나무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운명은 때로 우리에게 감미로운 산들바람을 보내고 때론 따뜻한 태양빛을 선서하며, 때로는 삶의 계곡에 '불행'이라는 질풍을 불어넣고 일상을 뒤흔든다. 우리는 최선의 - 적어도 그렇다고 판단한 - 선택으로 질풍을 피하거나 질풍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 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며, 물러설 곳 엋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소설을 끝내던 날, 나는 책상에 엎드린 채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나' 우리들이, 빅터 프랭클의 저 유명한 말처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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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매혹적이나 바닥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 보는 참혹함 때문에 일부러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남자, 괴물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남자, 괴물의 자식으로 키워진 남자, 어쩔수 없는 조력자이자 훼방꾼, 그 사이에서 파멸되어가는 여자들...

엄청난 이야기라는 소문은 들었으나 대면하기가 무서워 애써 밀쳐내다 결국 한밤중에 마지막장을 읽고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글을 써둡니다.

제안의 괴물을 대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안에 건재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스스로 열어젖힌 지옥문도 몇번을 경험했습니다.

좋은 문학작품은 독자가 글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현재의 위치를 알게 하며 가물거리는 별빛일 지라도 잠시나마 방향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신기루일지라도.

저는 아직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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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머리를 감겨준 사연 - 오이디푸스 누아르

2008년에 문학동네에서 신형철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가 나왔을 때 무려 700쪽이 넘는 책을 쓴 신예 평론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아직 박사학위도 없고 처음책을 낸 이 평론가에게 해설을 받으려는 시인과 소설가들이 줄을 섰다는 소문이 있다는 글을 보고 호기심에 구입하기는 했으나....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소설에 대한 글들을 읽기에는 참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학 평론의 장점은 재료가 문학이고 이를 평한 평론도 결국 문학작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미술평론이나 음악평론은 미술작품이나 음악작품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바로 그의 글은 그런 경지에 이른 보기드문 예가 아닌가 합니다.

책머리에서 신형철은,

(전략)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덕분에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이 질문은 본래 윤리학의 질문이 아닌가

(중략)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이 이런 것이라서 그토록 아껴왔거니와, 시정의 의론(議論)들이 아무리 흉흉해도 나는 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가지런해지던 날 나는 책을 묶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은 그때 정해졌고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 책을 이제야 낸다.


라고 썼습니다. 다들 성공을 떠들 때 몰락한 이들에게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찾아주는 세심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니... 완전히 매료되고 싶었으나 늘 그러하듯 서문만 읽고 서가 구석에 꽂혀 있다가 얼마전에 훨씬 쉬운 '운명의 공동체'라는 산문집이 나와 재미있게 읽고 나서 버려둔 전작을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답니다.

그중에 영화 <올드보이>를 위한 10개의 주석이라는 꼭지가 있어 읽게 되었습니다. 좀 길지만 간추려 보면,


1. 하나인 이름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살아온 '오대수'가 대충이 아니고 필사적으로 수습하는 인물이 되는데 필사적 수습계의 맞형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오이디푸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낮선 나라의 왕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자신의 내력을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이 푼 수수께끼도 모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곧 모든 것들을 필사적으로 수습하기 시작한다

오대수 = 오(이)디(푸)스 이다.


2. 유폐 혹은감금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로 떠나 머문 것과 오대수가 15년 동안 감금된 것은 같은 기능을 한다.
오이디부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얻었고 오대수는 아내를 죽여(살해한 것으로 누명) 딸을 얻는다.
둘다 운명을 피하기 위해 기를쓰고 노력해서 결국 운명을 실현시킨다.

3. 스핑크스 해석학

세 세대를 한 몸에 응축한 , 그래서 '나'이자 나의 '아버지'이며 나의 '자식'이기도 한삼종 혼합인간 오이디푸스는 결국 인간의 얼굴, 새의 날개, 사자의 몸통을 가진 삼종 혼합괴물 스핑크스 이기도 하다.

4. 세계의 신탁

길어서 생략^^

스핑스크(여자+사자 인 괴물) = 이우진 (절반은 소년 boy, 절만은 어른인 old 괴물 - old boy)

결국 오대수도 大獸 이고 아이디도 monster이다. 오대수도 이우진처럼 근친상간의 괴물이 된다

5. 분신들

계속해서 비슷장면이 반복된다 : 이우진과 오대수의 얼굴은 분할화면에서 합쳐져 하나가 된다, 오대수가 자살하려는 사람을 잡고 있는 장면 - 이수아를 이우진이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 장면, ....

6. 향유와 앎

라캉은 앎(knowledge, 지식)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스스로 '알고 있는' 앎과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모르고 있는' 앎이 있다. 우리의 향유( jouissance)와 우리의 진실(truth)이 존재하는 곳은 후자 쪽이다. - 먼말인지...^^:::

7. 사랑 기계

우리의 사랑은 그 자체가 고도로 병적인 것이다. - 사랑에 빠지는 일 속에는 자동적이다 못해 거의 기계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

8. 말과 비극

우리에겐 '인생을 통째로 복습'해도 알 수 없는, '스스로를 알지 몰하는 앎'이 있으며, 거기에 나의 진실과 향유가 걸려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한다.

라캉 - 사랑에 관해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향유다. - 세미나

9. 숭고와 괴물

눈먼 오이디푸스와 혀 잘린 오대스는 그 모습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함으로써 치명적인 향유를 가시화하는 끔찍한 그것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 죽지 않는게 더 비극적이다.

10. 미친 사랑의 노래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 영화를 윤리적 행위로 '반복'해야한다는 의무를 부과하는 영화라고 해야 한다. 무엇을 반복할 것인가? 오대수와 미도, 이우진과 이수아의 서사는 결국 실패한 사랑, 불가능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 '미친 사랑의 노래'를 계속 불러야 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결론이고 그의 급진적인 윤리학이다. 미친 사랑의 노래, 이 세상에 불가능한 사랑은 있을지라도 해서는 안 될 사랑 따윈 없다고 말하는 , 저 미친 사랑의 노래.


지젝에 라캉은 기본이고 가타라니 고진은 이름이라도 알지만 주판치지라는 듣도보도 못한 사람들의 글이 현란하게 인용되는 이 현란한 글을 애써 더듬더듬 읽고 나니.... 이렇게 세심하게 텍스트를 분석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한번 아이들과 두번을 보았으나 이 글을 읽고나니 어찌 또한번 안볼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얼마전에 미국 아마존에서 세일가로 구한 복수3부작 블루레이가 있었거든요.





평론을 생각하며 세심하게 컷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보던중 갑자기 오대수가 미도의 머리를 말려주는 장면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장도리 격투씬후에 둘의 섹스 씬 바로 후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 비극적 커플의 거의 유일한 평화로운 시간이었을 텐데 예전에 봤을 때는 워낙 이미지들이 강렬해서 였는지 제가 무뎌서 그랬는지 별다른 인상을 남기 못한 장면이었습니다. 왠일인지 이번에는 이상하게 이 사소한 장면에 눈이 계속 갔습니다.(아마도 급속한 갱년기 진행에 의한 호르몬 불균형이 원인이 아닐지) 이들이 얼마나 힘든, 그 어떤 불가능한 사랑을 할 지는 모르겠나 결국 세상의 모든 사랑은 이렇게 머리를 말려주는 가볍고도 진부한 장면으로 채워질 것이며 여기에 사랑이 숨어있다는 것.

그날 저녁 결혼 19년만에 처음으로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고 드라이로 꼼꼼하게 말려줬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녀를 보면서 손에 감겨오던 젖은 머리카락과 상쾌한 샴푸냄새가 아주 오랬도록 남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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