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차려주는 생일상

요리를 배우면 좋은 게 집으로 손님을 초대할 때 와이프 눈치를 덜 봐도 된다는 겁니다.^^  술마시면 설겆이를 못해서 혼날 수 있으니 손님중에 꼭 술을 못마시는 사람을 함께 초대해서 설겆이를 시키면 아주 좋습니다.


그동안 배운 몇가지 요리로 4월에 작은 녀석 생일 아침에 생일상을 봐줬는데 그때는 할줄 아는 게 몇가지 없어서 샐러드하고 유채 파스타를 만들어줬는데 나름 좋았습니다. 이번에는 저랑 생일이 가까워서 제대로 대접을 못받고 고3이라 시들시들한 큰 아이를 위해 아침상을 차려주기로 했습니다.


풀코스 정식으로 하고싶지만 이건 아무래도 김여사 생일때 해야할 거 같고 아침이지만 좀 거하게 차려보기로 했습니다.(아침밖에 같이 먹은 시간이 없어요. ㅠ.ㅠ)


이태리 정식코스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1. 안티파스토(Antipasto) : 파스타 앞에 나온다는 뜻으로 전채요리에 해당됩니다. 주로 차갑게 만든 요리인데 재료의 신선함을 살려서 요리합니다. 어패류, 올리브, 야채, 햄, 등등을 이용해서 만듭니다.


2. 프리모 피아토 : 첫번째 접시라는 뜻으로 스프나 밀가루 음식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파스타가 주인공이 되겠죠?


3. 세콘도 피아토 : 두번째 접시라는 뜻으로 메인 요리에 해당합니다. 생선이나 육류 요리가 나옵니다. 미국식 스테이크 처럼 거대한 고기가 나오는 건 아니구요. 다음에 코스가 하나더 있으니 양이 많지는 않습니다. 중간에 샐러드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4. 돌체 : 달콤하게 라는 뜻으로 후식에 해당됩니다. 엄청 부드럽고 달콤한 티라미스등등이 있지요.


이렇게 순서대로 써빙할 수는 없고 브로콜리와 연근을 넣은 샐러드, 레몬향을 입힌 삼치구이, 전복 리조또 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침6시가 식사시간이니까 미리 저녁에 재료를 준비해 놓고 새벽 5시쯤 일어나서 시작하면 됩니다. 물론 손이 빨라야 하지만요.^^


우선 레몬향을 입힌 삼치구이를 만들겠습니다.

먼저 야채를 잘게 썰어 올리브유에 볶습니다. 파프리카 색깔별로, 호박은 껍질 부분 따로, 속부분 따로 준비하고, 보리쌀을 삶습니다.


모아놓으니 이쁘죠?^^


야채를 볶는 순서는 단단한 것부터 무른 것 순으로 합니다. 당연한 거지만 귀찮다고 지키지 않으면 맛없습니다. 역시나 요리는 정성!!!

다 볶아서 접시에 담아놓습니다.



삼치를 올리브유, 마늘, 레몬즙, 레몬껍질을 강판에 간것(수입산은 찝찝해서 잘 안하는 데 한살림 레몬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ㅠ.ㅠ), 로즈마리 를 뿌려서 미리 재워놓습니다. (10분 정도)


생선에 올릴 소스는 케이퍼 (지중해지역에서 자라는 관목의 꽃봉오리를 따서 식초에 절여 놓은 것), 통후추, 월계수잎, 양파 다진 것, 화이트 와인이 들어갑니다.


화이트와인, 월계수잎, 케이퍼, 통후추, 양파를 넣고 졸입니다. 제대로 도마를 안닦아서 호박이 딸려들어갔네요. 알콜을 날리고 양이 1/3 정도 줄어들때까지가 적당합니다.



소스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루(roux : 버터와 밀가루를 혼합해서 볶은 것)를 넣어야 하는데 귀찮다고 그냥 밀가루하고 버터를 넣으면 밀가루가 뭉쳐서 이렇게 보기 흉하게 됩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시간 날 때 미리 '루'를 만들어 넣게 펴서 블록으로 나누어 얼려놓는게 좋습니다. 물론 매번 만들면 더 좋겠지만....^^



접시에 미리 볶아놓은 야채를 바닥에 깔고


팬에 노릇하게 구은 생선을 올리고


소스를 얹어서 식탁으로 ...

상큼한 와인 소스와 탁탁 씹히는 보리쌀이 아주 특이한 맛입니다.


두번째 요리는 큰아이가 좋아하는 전복죽 대신에 샤프란을 넣은 전복 리조또


리조또의 숨은 주인공은 아무래도 육수같습니다. 육수를 계속 부워가며 쌀을 끓이기 때문에 육수가 농축되어 쌀에 배게 되는데 결국엔 아주 강력한 고추장 같은 게 없는 상황에서는 육수의 맛이 전체를 좌우합니다.


보통은 닭고기 육수를 쓰지만 요리사가 채식주의자를 표방한 관계로 저는 주로 멸치 육수를 사용합니다.

좋은 대멸을 하루전에 찬물에 참가뒀다가 양파, 대파, 다시마 한조각을 넣고 부르르 끓여서 쓰는게 제일 깔끔합니다.

멸치가 눅눅하면 미리 냄비에서 볶아서 쓰면 더 좋구요. 겉으로 들어나진 않아도 베이스가 되는 게 중요하더라구요.


다음엔 전복을 손질해야하는데 제일 중요한 건 전복의 내장을 터뜨리지 않고 떼어내야 하는 겁니다. 숫가락을 껍질과 전복사이로 밀어넣어 껍질에 붙어 있는 패주를 분리하면되는데 의외로 단단하게 붙어있어 처음하시면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껍질쪽을 긁어주는 느낌으로 조심스레 움직여주는게 요령입니다. 떼어낸 전복은 조심해서 내장을 분리합니다. 내장이 별미라고 하지만 저희집은 촌스러워서 즐겨먹는 사람이 없네요.
전복은 올리브유에 살짝 볶은후 불을 끄고(불을 끄지 않고 와인을 부우면 기름이 엄청튀어서 혼납니다^^) 화이트 와인을 부워 살짝 익힙니다. 채에 건져서 전복을 식힌후 먹기좋게 자르고 국물은 잘 보관해 둡니다. 육수에 욕심을 내서 와인을 많이 붓고 오래 끓이면 질겨서 먹기 힘들어 집니다. (제가 이미 해봤으니 믿어주세요^^)

그 유명한 샤프란 (붓꽃과에 속하는 식물인 사프란 크로커스(saffron crocus, 학명: Crocus sativus) 꽃의 암술대를 건조시켜 만든 향신료이다. 암술대는 3개이며 이 부분을 말려서, 요리할 때 조미료로 쓰거나 염료로 쓴다. 지난 수십 년간 무게로 따졌을 때 가장 비싼 향신료였던 사프란은 서남아시아가 원산지다. 출처 : 위키)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쌌다고 하는데 최근 금값이 겁도없이 올라가서 이제는 금보다는 싸다고 하네요.
제가 요리시간에 구한건데 0.02g에 오천원.

가루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미리 따뜻한 육수에 풀어서 준비하고 맨 나중에 넣습니다.
요리강습 시간에 선생님이 보여주신 샤프란. 암술만 모은 거라 실고추 말린거 같은데....^^



올리브유에 다진 양파를 볶다가 씻어놓은 쌀을 넣고 볶아줍니다. (흰쌀을 권장하구요 저희는 흰쌀이 없어서 제일 가까운 오분도미)
그다음부터는 한두국자씩 따뜻한 육수를 계속 부워주면서 저어줍니다. 백미의 경우 15분정도 걸립니다. 물론 손바닥에 물집생길 거 같으면 대충 육수 많이 붓고 눌지않게 저어주시면 됩니다. 대신 리조또가 아니고 죽이 됩니다.^^
쌀을 씹어서 알 덴테(이빨에 씹히는)가 되면 모셔놓았던 전복-와인 육수를 부어 주고 맨 마지막에 샤프란을 녹여놓은 육수를 부워주면 아주 아름다운 노란색이 됩니다. 향기가 아주 좋지요.


아주 뿌듯합니다.^^

불을 끄고 미리 준비한 전복을 넣어 섞어주고 파마산 치즈를 갈아서 뿌려줍니다.

파슬리를 뿌리면 완성!



더위에 공부가 안되는 지 독서실에 간다해놓고 농구하다 들켜서 엄청 혼난 재관아!
시들시들한 널 보면 참 미안하고 측은하구나.
여름 잘 보내고 수능끝나면 자전거타고 해남까지 아빠랑 달리기로 한거 꼭 지켜야한다.^^
생일축하한다.


About this entry


엉겅퀴




엉겅퀴, 국화과 여러해살이풀
피를 엉기게 한다하여 엉겅퀴라는 이름이 붙었다

상처받아 피흘리는 가슴에 효과가 있다

줄기에서 흐르는 진액을 독한 술에 타서 상처에 바른다.
기억을 뽑아내기 위해 잡아당기면 가시가 파고들어 엉킨 가슴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풀리지 않는다.

꽃말은 복수


About this entry


아내의 머리를 감겨준 사연 - 오이디푸스 누아르

2008년에 문학동네에서 신형철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가 나왔을 때 무려 700쪽이 넘는 책을 쓴 신예 평론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아직 박사학위도 없고 처음책을 낸 이 평론가에게 해설을 받으려는 시인과 소설가들이 줄을 섰다는 소문이 있다는 글을 보고 호기심에 구입하기는 했으나....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소설에 대한 글들을 읽기에는 참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학 평론의 장점은 재료가 문학이고 이를 평한 평론도 결국 문학작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미술평론이나 음악평론은 미술작품이나 음악작품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바로 그의 글은 그런 경지에 이른 보기드문 예가 아닌가 합니다.

책머리에서 신형철은,

(전략)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덕분에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이 질문은 본래 윤리학의 질문이 아닌가

(중략)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이 이런 것이라서 그토록 아껴왔거니와, 시정의 의론(議論)들이 아무리 흉흉해도 나는 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가지런해지던 날 나는 책을 묶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은 그때 정해졌고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 책을 이제야 낸다.


라고 썼습니다. 다들 성공을 떠들 때 몰락한 이들에게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찾아주는 세심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니... 완전히 매료되고 싶었으나 늘 그러하듯 서문만 읽고 서가 구석에 꽂혀 있다가 얼마전에 훨씬 쉬운 '운명의 공동체'라는 산문집이 나와 재미있게 읽고 나서 버려둔 전작을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답니다.

그중에 영화 <올드보이>를 위한 10개의 주석이라는 꼭지가 있어 읽게 되었습니다. 좀 길지만 간추려 보면,


1. 하나인 이름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살아온 '오대수'가 대충이 아니고 필사적으로 수습하는 인물이 되는데 필사적 수습계의 맞형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오이디푸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낮선 나라의 왕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자신의 내력을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이 푼 수수께끼도 모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곧 모든 것들을 필사적으로 수습하기 시작한다

오대수 = 오(이)디(푸)스 이다.


2. 유폐 혹은감금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로 떠나 머문 것과 오대수가 15년 동안 감금된 것은 같은 기능을 한다.
오이디부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얻었고 오대수는 아내를 죽여(살해한 것으로 누명) 딸을 얻는다.
둘다 운명을 피하기 위해 기를쓰고 노력해서 결국 운명을 실현시킨다.

3. 스핑크스 해석학

세 세대를 한 몸에 응축한 , 그래서 '나'이자 나의 '아버지'이며 나의 '자식'이기도 한삼종 혼합인간 오이디푸스는 결국 인간의 얼굴, 새의 날개, 사자의 몸통을 가진 삼종 혼합괴물 스핑크스 이기도 하다.

4. 세계의 신탁

길어서 생략^^

스핑스크(여자+사자 인 괴물) = 이우진 (절반은 소년 boy, 절만은 어른인 old 괴물 - old boy)

결국 오대수도 大獸 이고 아이디도 monster이다. 오대수도 이우진처럼 근친상간의 괴물이 된다

5. 분신들

계속해서 비슷장면이 반복된다 : 이우진과 오대수의 얼굴은 분할화면에서 합쳐져 하나가 된다, 오대수가 자살하려는 사람을 잡고 있는 장면 - 이수아를 이우진이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 장면, ....

6. 향유와 앎

라캉은 앎(knowledge, 지식)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스스로 '알고 있는' 앎과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모르고 있는' 앎이 있다. 우리의 향유( jouissance)와 우리의 진실(truth)이 존재하는 곳은 후자 쪽이다. - 먼말인지...^^:::

7. 사랑 기계

우리의 사랑은 그 자체가 고도로 병적인 것이다. - 사랑에 빠지는 일 속에는 자동적이다 못해 거의 기계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

8. 말과 비극

우리에겐 '인생을 통째로 복습'해도 알 수 없는, '스스로를 알지 몰하는 앎'이 있으며, 거기에 나의 진실과 향유가 걸려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한다.

라캉 - 사랑에 관해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향유다. - 세미나

9. 숭고와 괴물

눈먼 오이디푸스와 혀 잘린 오대스는 그 모습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함으로써 치명적인 향유를 가시화하는 끔찍한 그것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 죽지 않는게 더 비극적이다.

10. 미친 사랑의 노래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 영화를 윤리적 행위로 '반복'해야한다는 의무를 부과하는 영화라고 해야 한다. 무엇을 반복할 것인가? 오대수와 미도, 이우진과 이수아의 서사는 결국 실패한 사랑, 불가능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 '미친 사랑의 노래'를 계속 불러야 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결론이고 그의 급진적인 윤리학이다. 미친 사랑의 노래, 이 세상에 불가능한 사랑은 있을지라도 해서는 안 될 사랑 따윈 없다고 말하는 , 저 미친 사랑의 노래.


지젝에 라캉은 기본이고 가타라니 고진은 이름이라도 알지만 주판치지라는 듣도보도 못한 사람들의 글이 현란하게 인용되는 이 현란한 글을 애써 더듬더듬 읽고 나니.... 이렇게 세심하게 텍스트를 분석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한번 아이들과 두번을 보았으나 이 글을 읽고나니 어찌 또한번 안볼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얼마전에 미국 아마존에서 세일가로 구한 복수3부작 블루레이가 있었거든요.





평론을 생각하며 세심하게 컷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보던중 갑자기 오대수가 미도의 머리를 말려주는 장면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장도리 격투씬후에 둘의 섹스 씬 바로 후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 비극적 커플의 거의 유일한 평화로운 시간이었을 텐데 예전에 봤을 때는 워낙 이미지들이 강렬해서 였는지 제가 무뎌서 그랬는지 별다른 인상을 남기 못한 장면이었습니다. 왠일인지 이번에는 이상하게 이 사소한 장면에 눈이 계속 갔습니다.(아마도 급속한 갱년기 진행에 의한 호르몬 불균형이 원인이 아닐지) 이들이 얼마나 힘든, 그 어떤 불가능한 사랑을 할 지는 모르겠나 결국 세상의 모든 사랑은 이렇게 머리를 말려주는 가볍고도 진부한 장면으로 채워질 것이며 여기에 사랑이 숨어있다는 것.

그날 저녁 결혼 19년만에 처음으로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고 드라이로 꼼꼼하게 말려줬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녀를 보면서 손에 감겨오던 젖은 머리카락과 상쾌한 샴푸냄새가 아주 오랬도록 남을 거 같습니다.


About this entry



<< Previous : [1] :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103] : Next >>

Calendar

<<   2025/12   >>
S M T W T F S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