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스티브 잡스가 2005년에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를 했던 내용.

성공한 사업가의 연설이라기 보다는 삶의 고갱이를 들여다본 깊은 눈을 가진 형님의 다정한 충고 같은 연설문.


원문은 : http://news-service.stanford.edu/news/2005/june15/jobs-061505.html


서론

스탠포드와 같은 세계 명문대 졸업식에 여러분과 함께 설 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지요. 고백하자면 이렇게 가까이서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기는 처음입니다. 오늘 저는 졸업생 여러분께 제 인생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더도 말고 딱 세가지 이야기만 하지요.

첫째 이야기

그 첫번째는 점 잇기 그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리드 칼리지2)를 한학기만에 그만 뒀어요. 하지만 그후 일년반 동안 청강 생활을 했어요. 왜 제가 대학을 그만 뒀을까요?

그 이유는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미혼모 대학원생이었던 생모는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 했습니다. 어머니는 대졸자 양부모를 강력히 원했고, 제 미래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집안에 입양되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제가 태어났을 때 이 집안은 사실은 딸을 원했다면서 입양을 거절했습니다. 그 당시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었던 양부모님은 한밤 중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어요. “예정에 없던 사내 아이가 나왔는데 받으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양부모님은 “좋습니다”로 대답했지요. 친어머님은 나중에 양아버지는 고졸 중퇴에, 양어머니는 대학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입양 계약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어요. 몇 달 후에 양부모님이 제가 크면 대학에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하자, 친어머님은 수락하셨죠.

그로부터 17년후에 대학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진하게도 스탠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택했습니다. 일반 근로자였던 양부모님이 저축한 모든 돈이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6개월 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대학 교육이 어떤 도움이 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까먹고 있었죠. 그래서 자퇴를 결심했고, 모든 일이 잘 될거라고 믿었습니다. 당시에는 꽤 두려웠지만, 돌아 보면, 제가 인생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자퇴를 하고 나니, 관심없었던 필수과목 대신 듣고 싶었던 강의를 청강할 수 있었습니다.

낭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기숙사에 방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네 집 거실에서 잠을 잤고, 콜라 빈병을 모아 재활용센터에 갖다 주고 병당 5센트를 받아서 먹을 것을 샀고,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양질의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3)의 일요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식사는 정말로 좋았습니다. 제 호기심과 직감으로 얻는 대부분의 경험은 이후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만큼 소중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예를 한가지 들어 보지요.

그당시 리드 칼리지에서는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교정 곳곳의 포스터, 서랍의 레이블 마다 아름다운 서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자퇴를 했으니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서체 수업을 듣기로 작정했습니다. 세리프와 산 세리프 서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자모의 결합에 따라서 자간을 달리 둠으로써 훌륭한 서체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웠고, 역사적으로 유명했으며, 과학은 따라 갈 수 없는 섬세한 예술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매료되었죠.

이것이 내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될 것인가 하는 한 가닥 희망 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십 년 후,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의미가 와 닿았습니다. 매킨토시와 접목을 시켰을 때, 미려한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탄생했으니까요. 제가 만약에 그때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매킨토시는 다중 서체나 비례적으로 자간을 조정하는 글꼴을 가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윈도우즈가 맥을 그대로 따라 했으니까, 매킨토시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퍼스널 컴퓨터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겠죠. 자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을 테니, 퍼스널 컴퓨터는 오늘날과 같은 훌륭한 인쇄술을 가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었을 때에는 이런 미래의 점들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돌아 보았을 때, 모든 게 분명히 보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미래의 점들을 이어 그림을 볼 수는 없어요. 과거의 점들은 이어 보면 그림이 보이죠. 그러므로 이런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이어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건 간에 믿어야 합니다. 이런 인생관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종국에는 인생까지 변화시켰습니다.

두번째 이야기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 것입니다.

운 좋게도 저는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았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에 워즈4)와 같이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10년 안에 애플은 사천 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짜리 회사로 컸습니다. 창사 이래 최고의 걸작품인 매킨토시를 전년도에 출시했고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고를 당했죠. 스스로 창업한 회사로부터 어떻게 해고를 당할 수 있느냐구요? 애플의 규모가 점점 커감에 따라 저와 함께 회사를 관리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을 영입했고, 한 해 정도는 잘 굴러 갔습니다. 그러다가 회사의 장래에 관한 견해가 엇갈리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불화로 번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회사의 이사진들은 그 사람 편을 들었죠. 그래서 나이 서른에 쫓겨 났던 겁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말입니다. 제 인생의 초점이 사라졌고, 그것은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좋을 지 앞이 깜깜했습니다. 마치 제쪽으로 오던 바톤을 놓친 것처럼 한 세대 전의 기업가들을 볼 면목이 없었어요. 데이빗 패커드5)와 밥 노이스6)를 만났고 볼쌍 사나운 제 실패에 대해 사과를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아주 공공연한 실패작이라 차라리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을 칠까 하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여전히 제가 하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 있었던 사건은 그 사랑을 조금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축출당했지만, 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 당한 사건은 돌아 보면 제 인생에서 일어났던 최고의 사건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성공이라는 무거움을 벗고, 확신은 전보다 줄었지만, 다시 처음 시작한다는 가벼움으로 임했습니다. 해방된 기분을 만끽하며 제 인생의 가장 창의적인 시기로 접어 들게 되었던 거죠.

그로부터 5년간, 넥스트7), 그리고 픽사8)를 창업했고, 제 아내가 될 멋진 여자와 사랑에 빠졌죠.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반전으로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9)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 왔고, 넥스트에서 개발했던 기술은 현재 애플 르네상스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로렌스와 저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죠.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 그것은 지독하게 입에 쓴 약이었지만, 그 환자는 그 약이 필요했나 봅니다. 때로 삶은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칩니다. 신념을 버리지 마세요. 제가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임을 이제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듯이 일도 그런거죠. 자신이 하는 일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진정한 만족을 얻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가 훌륭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것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 보세요.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마세요. 가슴으로 알 수 있는 모든 일이 그렇듯, 일단 찾았으면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인지 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사랑처럼, 해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일을 찾을 때까지 계속 탐색을 하십시오. 현재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세번째 이야기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열 일곱 살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마지막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옳은 길로 들어 설 것이다.” 이 말에 감명을 받은 저는 그로부터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이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 라는 대답이 계속 나온다면, 무엇인가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생이 마지막 순간이 언제 찾아 올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야 말로 제가 인생의 중대 결정을 내릴 때 의지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심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다 도망치고,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은 잃어버릴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입니다. 당신은 이미 벌거 벗은 상태입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일년 전쯤에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30반에 씨티 촬영을 했는데, 췌장에 종양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 췌장이 뭔지도 몰랐어요. 의사들은 이 암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며, 길어야 석달에서 여섯달이라고 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에 가서 주변을 정돈하라고 하더군요. 환자에게 죽을 채비를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하리라 생각했던 이야기를 불과 몇 달 안에 다 하라는 것입니다. 매사를 잘 마무리해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을 가능한한 줄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작별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온종일을 보냈습니다. 그날 저녁,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목구멍으로 통해서 위장을 거쳐 장까지 내시경을 넣고, 췌장에 바늘을 꽂아서 종양에서 세포를 채취했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나중에 집사람이 얘기해주더군요. 현미경으로 조직세포를 본 결과 아주 드문 췌장암의 한 종류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구요. 의사들이 눈물을 글썽거렸죠.

그때만큼 죽음의 문전에 가까이 가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 몇 십 년동안 다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겪고 나니, 죽음 자체가 유용할 수 있지만 순전히 지적인 개념이었던 시절보다 좀 더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 가고 싶은 사람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어느 누구나 도달하는 목적지입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과도 같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죽음은 ‘삶’의 변화물질입니다 옛것을 치우고, 새것을 위한 공간을 만듭니다. 지금 그 ‘새것’은 바로 여러분이지만, 언젠가 여러분도 ‘옛것’이 되고, 치워지겠죠. 지나치게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결어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서 낭비를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이의 생각이 빚어낸 결과가 구속하는 삶, 즉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여러분 안의 목소리가 다른 이의 의견이 내는 소음에 익사당하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 있게 당신의 가슴과 직감이 하는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는 어떤 식으로든 여러분이 진정 무엇이 되고자 하는 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이외의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전체 지구 목록10)이라는 굉장한 책이 있었는데 우리 세대 바이블 중 하나였죠. 지금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맨로 파크11)에 살던 스튜어트 브랜드12)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이 책에 자신만의 시적 영감을 불어 넣었죠. 1960년 후반이었는데 퍼스널 컴퓨터나 탁상 출판이 출현하기 전이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었습니다. 구글이 존재하기 35년전에 있었던, 책으로 된 구글 같은 것이었죠.

스튜어트과 그 팀은 전체 지구 목록의 몇가지 증보판을 냈고, 수명을 다했을 무렵, 최종판을 출판했습니다. 1970년 중반이었고, 그때 저는 지금의 여러분 나이였습니다. 최종판 뒷쪽 커버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붙어 있었어요. 모험심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그 사진 속 시골길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죠.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그리고 늘 제 자신이 그러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새 출발을 위해 졸업을 하고, 저는 여러분께 똑같은 소망을 보냅니다.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역주

1) 이전에 번역한 적이 있는데 오류가 있던 부분을 일부 수정하고 정리했다.
2) Reed College
3) the Hare Krishna:힌두교 계열
4) Woz: Steve Wozniak의 애칭.
5) David Packard: 휴렛 패커드의 공동 창업자.
6) Bob Noyce: 인텔의 공동 창업자.
7) NeXT: 넥스트 컴퓨터는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력은 인정 받았으나 대중화에는 실패한다.
8) Pixar Animation Studios: 사실 스티브 잡스가 인수한 것이지 창업을 한 것은 아니다.
9) 당시 BeOS 역시 인수 대상으로 물망에 올랐으나 파워게임에서 밀렸다.
10) The Whole Earth Catalog: 카탈로그 형식을 취했고 1968년에서 1972년 동안 일년에 두번 발행했다. 이 잡지는 독자 스스로가 영감을 발견하고 자신의 환경을 결정 짓는 사고의 도구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고 독자들의 모험심을 장려했다.
11) Menlo Park
12) Stewart 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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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

겨울철 농한기 동안에는 환자가 많아서 평일에 돌아가면서 하루씩 쉬는 안식일이 없었습니다. 두달간 8일을 더 일했으니 겨울 휴가를 가자고 하는데 꼴랑 금토 이틀을 준다고 합니다.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는데 복작거리는 스키장은 싫고 겨울에 자전거 여행을 하자고 하면 옥쇄 파업을 일으킬거 같고... 그러다가 문득 싱가폴 생각이 났습니다. 레고동호회 후배가 현대상선 싱가폴 지사에 파견나가 있거든요.

무작정 금토일 싱가폴로 간다고 후배한테 연락을 드리니 스케줄을 쫙 짜서 보내주더군요. 객지에서 손님치레를 지겹게 했을 텐데 미안하게도 신세를 지게되었네요.

금요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싱가폴에 3시 도착. 자리 배정해주는 사람이 가운데 낀 자리를 줘서 화장실도 맘대로 못가고 엄청 고생했습니다. 아무래도 체질이 비행기 보다는 자전거라...^^



그나마 싱가폴항공이 맘에 드는건 예쁜 언니들은 없으나 먹을 건 아주 실하게 줍니다. 타자마자 샌드위치에 맥주(타이거 맥주) 계속주고 아주 좋았습니다. 다만 포도주는 맛이 별로였습니다.


창이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 가로수가 아주 멋집니다.





호텔 앞에서 찍은 수륙양용 관광차. 시내를 다니다가 강으로 풍덩 들어간다고 합니다.


후배를 호텔에서 만나서 시내관광을 갔습니다. 두리안처럼 생긴 건물은 공연장이라고 합니다.


사자와 인어의 키메라인 '머라이언'상 앞에서 기념 촬영. 재관이 옆에 있는 학생은 재관이 친구인데 싱가폴로 어학연수 와 있어서 이번에 만났습니다.


후배가 봉고차까지 대절해서 와서 편하게 시내구경을 했습니다. 여기저기 설명을 듣고 중간에 구경한 힌두교 사원.













관람용 수족관이 아니고 시푸드 식당에서 찍은 수족관입니다. 물고기들이 아주 생생합니다. 먹기에는 너무 이쁘군요.^^ 여러가지 요리로 포식을 했으나 먹느라 정신이 홀려서 사진은 못찍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클락키'라는 곳으로 산책을 했습니다. 싱가폴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을 주위로 번화한 관광지였습니다. 여행객들이 많더군요.





가운데 있는 철탑은 인간 새총입니다.^^





늘씬한 핫팬츠가 돋보이는 후터스걸을 찍고 싶었으나 저보다 더 피가 끓는 청소년들이 있어서 참았습니다.^^




고정하고 있다가 고무줄을 당겨서 하늘로 쏘는 번지입니다. 네명이 타는데 짜릿하겠더군요. 예상외로 인기는 별로.

다음 코스는 후배가 일하는 '선택 빌딩'으로 가서 야경을 구경했습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 열쇠를 가지고 있는 든든한 백이 있어서...^^ 거기서 싱가폴의 역사, 지리, 정치등에 대해서 브리핑까지 받았습니다. 감격!!!




삼각대가 없어서 사진이 좀 흔들렸습니다.

다음 코스는 열대과일을 먹으러 시장으로 갔습니다. 여기는 일반적인 관광지 소개에는 나오지 않는 곳이랍니다. 싱가폴 답지않게 좀 지저분하고 시끌벅적하거든요. 저는 너무 깔끔한 '클락키' 보다는 여기가 훨씬 더 맘에 들었습니다.


두리안 친척같은데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두리안보다 몇배나 큽니다.


열대과일의 황제라는 두리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오른쪽 구석의 아저씨는 현지인 같은데 정말 맛나게 두리안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여러가지 과일을 사서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남아서 호텔로 가지고 와서 틈나면 먹었습니다. 호텔에 아이들 데려다 놓고 18금 써비스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싱가폴 슬링'의 원조집입니다.^^


별 여섯개 호텔 안에 있는 바입니다. 여기는 바닥에 땅콩껍질을 맘대로 버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여기서는 아주 특별한 일이라니 신기하지요.






천장에는 선풍기 대신에 부채가 달려있는게 재미있습니다.




호텔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주차장에 웬 람보르기니(10억쯤 할까요?)가 줄줄이 서있습니다. 차에는 관심이 별로 없지만 이런 진풍경을 지나칠 수 없어서 사진 몇장 찍었습니다. 외국사람들도 신기한지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더군요.








팬패시픽 호텔에도 설이 다가와 붉은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을 했습니다.

아침부터 강행군을 마치고 무지막지한 내일의 일정을 위해 바로 취침.^^







여행 둘째날 받은 지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침은 알아서 먹어라.
2. 택시를 타고 주롱 새공원으로 가라. : 새쇼를 보고 모노레일을 타라.
3. 점심은 싱가폴 동물원 앞에서 먹어라.
4. 오후엔 동물원 구경
5. 저녁엔 나이트 사파리 구경 : 야간 동물쇼를 보고 트렘을 타고 한바퀴 돌아라.
6. 알아서 호텔로 돌아와라.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또 강행군입니다. 일정은 짧고 볼 건 많고 어쩔 수 없지요.




들어가자마자 펠리컨


가마우지?


혹시 새먹이?


홍학




표지판에 말하는 새라고 씌여있는데 아무리 말을 시켜도 아무 대답을 안하더군요. 아래 사진의 중국젊은이들도 아무리 말을 시켜도 대답을 안하자 결국엔..." Fxxxxx" 하더군요. 그러나 역시 묵묵무답.^^




요금을 받고 새들과 사진을 찍는 코너입니다. 곳곳에 이런식으로 돈을 쓰게 만들어놨더군요. 재주는 새가 넘고 돈은 사람이 버는...^^





인도 할아버지 팔이 무척 무거워 보입니다.^^


다음 지령을 완수하기 위해 서둘러 공연장으로 갔습니다. 미리 명당을 잡고 기다리니 꽤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오더군요. 맨 앞자리에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GNP가 높다고 선진국은 아닌거죠.

쇼가 시작되자 새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 분위기를 돋굽니다. 돌아다니면서 아이들도 안아주고 악수도 하고...










홍학등장























관객들 손으로 새가 날아가 음료상품권을 주거나 관객의 손에 든 돈을 물어다 주거나 하는 쇼를 하는데 참 신기하더군요. 이정도는 에버랜드에서도 한다고 하면 ....ㅠ.ㅠ

앵무새 농구대회







맹금류쇼가 10시에 있었는데 늦게와서 못 봤습니다. 잠깐 나온 독수리. 나는 모습이 아주 멋지더군요. 이녀석은 우리에 갖혀있는 동료들 보다는 행복한 녀석이지요. 비록 쇼를 해야하지만.








진짜로 말하는 앵무새. 영어와 중국어로 열까지 세기도 하고 노래도 몇곡 부르더군요. 정말 신기신기!!


쇼를 보고 한바퀴 공원을 둘러봤습니다.

관비둘기. 새우리가 격리되어 있지 않고 관객과 통해있어 길에도 막 나다닙니다.



아주 커다란 새장. 갖가지 앵무새가 있어 아주 볼만했습니다. 먹이를 주면 엄청나게 달려듭니다.






















공원을 한바퀴 도는 모노레일.



한바퀴 공원을 구경하고 모노레일을 타러가는데 신기하게 생긴 새가 울타리를 넘어와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겁니다. 그래서 지관이 한테 가까이 가서 서있으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좀 더, 좀 더, 좀 더......










이러다 결국....ㅠ.ㅠ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지관이의 부상. 전치 1일.


지관이가 하도 슬프게 울어서 아빠도 같은 아픔을 당하겠다고 옆으로 갔으나 너무 무서워서.... 비겁한 모습입니다.^^


이렇게 생긴 녀석입니다. 조심하세요.



모노레일을 타고 한바퀴 돌면서 빠뜨리고 지나간 인공폭포도 구경하고 다음 지령에 따라 동물원으로 이동.

















싱가폴 화장실중에 하나는 변기 옆에 수도꼭지가 있습니다. 손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을 위한 거라고 합니다.(철계란님 설명) 뒤를 보고 휴지로 닦는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별로 많지 않습니다. 물로 해결하는게 친환경적이죠.

다행히도 여행중 날씨가 그리 덥지 않아서 고생은 덜했지만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더군요. 아이들이 말하는 싱가폴 여행 난이도는 지리산 종주하고 비슷한거 같다고 합니다.^^

동물원으로 이동해서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일년에 한번 먹을까말까한데 동물원 앞에는 피자하고 KFC밖에 팔지 않더군요. ㅠ.ㅠ

동물원은 트램을 타지않고 내내 걸어서 다니기로 했는데 나중에 무척 후회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넓어서...ㅠ.ㅠ



수달의 호기심


낙타의 웃음


늑대의 불안


동물원 곳곳에 이런식의 그림, 사진, 만화등으로 쉽게 설명하려고 애쓴 모습이 보이고 자연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열심히 광고하는 모습이 보기좋더군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동물원에서 제일 감동적이었던 오랑우탄의 모습.






















돈을 내면 오랑우탄하고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저희는 외화를 절약하느라 옆에서 찰칵!


매너티한테 밥을 주는 아가씨.









과일을 먹는 박쥐라는데 어찌나 크고 잘 날아다니는지 정말 대단하더군요.
























동물원에서 파는 물통하나에도 세심한 디자인이 숨어있습니다.


백호. 설명을 읽어보니 '알비노'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기야 알비노(백색증, 멜라닌 색소가 결핍된 변이종)라면 검은 줄무늬도 없어야 맞겠죠.


백인.


나뭇잎을 쓴 물고기.


하쿠나 마타타


비비 무리.









털고르기를 하는 모습 : 사람들도 이런 습관이 있는데 털고르기를 하려면 이제는 이발소, 미장원을 가거나 병원에 가게됩니다.^^

동물원의 횡단보도. 작지만 아이디어가 빛납니다.














말레이 '맥'에 대한 설명입니다. 점자로도 나와있고 맥의 모습에 대한 설화도 소개하니 더 재미있습니다.











기나긴 오전,오후 일정이 끝나고 나이트 사파리로 갔습니다. 동물원 바로 옆에 있는데 저녁을 다양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목이 말라서 연신 맥주를 들이켰더니 만사가 귀찮고 게다가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오는지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마음 같아선 구경이고 뭐고 호텔로 돌아가 잠이나 자고 싶었으나 지령을 완수하지 못했을 때 뒷일을 생각하니 눈물을 머금고 나이트 사파리 구경에 나섰습니다.(사실은 패키지로 세가지를 한꺼번에 표를 사는 바람에...ㅠ.ㅠ)



들어가자마자 인파를 헤치고 야간 동물쇼를 보러갔습니다. 가까스로 들어가 구경을 하는데 사진찍을 때 플래쉬를 터트리지 말라고 사회자가 애원을 하는데도(4개국어로 말합니다. 물론 한국어도^^) 끝까지 터트리더군요. 물론 저는 아닙니다. 제일 밝은 렌즈와 감도를 높이면 이정도 사진을 찍을 수 있지요.









진행 도중에 갑자기 뱀 한마리가 도망쳤다고 말하고는 관객석 가운데서 무지막지한 뱀을 찾아서 나옵니다. 나중에 나갈때 보니 바닥에 뱀을 넣어두는 자리가 있더군요.^^ 관객중에 '마초맨'이 있으면 나오라는데 저는 '허접맨'이라 나가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너구리가 나오고 수달이 기특하게도 쓰레기를 분리수거합니다.^^




화장실 앞에 있는 수족관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여기는 더운 나라라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습니다. 수도가 얼어터질 걱정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겠지요.


다음으로 산책코스를 따라 구경을 했는데 밤이라 잘 뵈지도 않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트램 한바퀴타고 밤 11시쯤 호텔로 돌아와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미션 성공!!






드디어 마지막날입니다.

오늘 받은 지령은
1. Mountin Faber에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센토사 섬으로 가라.
2. 알아서 놀다가 모노레일을 타고 vivo city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ochard 거리로 나와라.
3. 타카시마야 백화점 5층에 있는 레고샵에서 6시에 접선.

작년 여름에 세일로 산 오클리 샌달이 발에 맞지 않다 다들 발이 아프다고 해서 선택 타워로 가서 신발사고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길을 잘못들어 옆 건물로 들어가니 마침 푸드코트가 있어서 저렴하고도 맛나게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게 저희집 신조라 다들 중국식, 베트남식, 인도식으로 다양하게 먹었습니다.

지나가다 공중전화 부스 같은 곳에서 머리깎는 모습입니다.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어 레고 구경하고 기념으로 바이오니클 하나 사줬습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센토사섬으로 가고있습니다.








유람선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지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센토사섬에 도착해서 가이드를 따라 나비박물관에 먼저 갔는데 어제 동물을 지겹도록 본지라 동물이라면 신물이 넘어온다고 해서 해변으로 갔습니다. 센토사섬 내에서는 다양한 코스의 셔틀버스가 무료로 운행되고 있어서 편리했습니다.















무작정 셔틀버스를 타고 제일 가까운 해변으로 가보니 기대와는 달리 비키니는 꼴랑 한명. ㅠ.ㅠ 물을 보면 지나칠수없는 지관이만 물놀이를 하고 나머지 멤버는 맥주 마시면서 쉬기로했습니다.

싱가폴답게 모두 인공으로 조성한 해변이라고 합니다.








지관이 사진을 찍는 척하면서 옆에 있는 비키니 사진을 찍는데...

지관 : 아빠! 찍었어?
아빠 : 모른척... 뭘 찍어. 너 찍었지.
지관 : 에이~~ 저 찍는 척 하면서 옆 아줌마 찍는거 다 알아요.
아빠 : 허걱!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더운 대낮에 낮술을 좀 마셨더니 술기운이 올라와서 한참을 쉬다가 돌고래쇼를 보러갔습니다. 처음으로 이층버스를 타봤죠.







거리에는 공작새가 마치 비둘기처럼 걸어다닙니다.



















모노레일을 타고 비보시티로 가야하는데 실수로 케이블카를 왕복으로 끊어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지하철을 타러 비보시티로 갔습니다.

유람선에 승객들이 수영을 하고 있네요.


싱가폴 지하철을 일회용 종이표가 아니고 다시쓰는 플라스틱 카드로 되어있습니다. 나중에 카드를 넣으면 돈을 환불해 줍니다.








드이어 철계란님하고 접선하기로한 레고샵앞에 도착.




저녁에 후배 만나서 다양한 만두로 식사를 하고 몇가지 쇼핑을 하다가 공항에서 11시 45분 비행기를 타고 밤새 날아왔습니다.

역시 여행은 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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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겨울

김포에서 강화로 자출하다 얼마전 목동으로 이사후 자전거 출퇴근을 몇 번 못했습니다. 날도 춥고 몸도 게을러지고 여행다녀오고...게다가 이상하게도 요새 차가 안막혀 목동에서 강화읍까지 자동차로 한시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차가 많이 막혀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보람이 있는데....^^ 그동안 44킬로를 1시간 50분 정도에 다녔는데 요즈음은 컨디션이 좋았는지 아니면 뒷바람이 불었는지 놀랍게도 1시간 30분에 주파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할때는 서울 날씨가 풀렸다고 해서 가볍게 입고 나서면(분명히 영상 5도) 김포 지나서 부터 슬슬 추워지기 시작해서 강화 근처까지 가면 얼음이 꽁꽁 얼어 있습니다. 같은 위도에서 온도차가 이렇게 크다는 건 서울의 환경이 많이 나쁘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온도차가 많이 나서 복장을 맞추기가 어렵네요. 몸이 추운건 빨리 달리면 되는데 손발이 시려워서 괴롭습니다.ㅠ.ㅠ

왕복 4차선 도로인 48번 도로를 한시간 넘게 주행햐야하기 때문에 후미등을 두개켜고, 반짝이는 점멸등을 자전거에 세개 붙이고 헬멧에도 하나 붙이고 야광 엑스밴드까지 하고 양쪽 발목 반사밴드까지 엄청나게 치장을 하고 다닙니다. 운전자가 최소한 잘 안보여서 쳤다는 말은 못하게 하려구요.^^ 제 뒷모습이 어떠냐고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엄청 요란하다고 합니다. 그럼 성공이겠죠?



도로주행을 오래 하다보니 제 생각에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갓길에 붙어서 주행할때는 오히려 버스가 빵빵거리며 바짝 붙어 주행하고 위협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물론 옆으로 지나갈테니 조심하라고 경적을 울리기도 하지만 악의적으로 가장자리로 몰아붙이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배짱으로 차선 하나를 차지하고 가운데로 가거나 바깥차도의 1/3 지점으로 주행을 합니다. 뒤에서 빵빵거리면 고개를 돌려서 째려보기만 하고 절대로 안비켜줍니다.



당신들은 차선하나가 더 있으니 답답하면 차선 변경해서 가시요. 차선하나는 미운놈이 차지 하겠소! 하는 마음으로요.



이렇게 주행하니 오히려 알아서 대부분 잘 비켜서 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약자라고 알아서 보호해 주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만 생활하고 자동차에서 난방이 잘 된 건물로만 이동하며 살아가면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 무관심해 질 수 밖에 없지만 지난 반년동안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기후변화에 예민해졌습니다. 3년전 강화로 처음 왔을 때만해도 겨울에 얼음이 꽝꽝얼어서 스케이트장에서 썰매도 탔고 강화대교를 건널때면 한강에서 떠밀려온 얼음 덩어리가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불과 3년만에 얼지않는 겨울을 보내게 되는군요. 누구는 겨울이 춥지 않아서 자전거 타기 좋다고 하지만 추운 겨울을 손주들에게 옛날 이야기로만 전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슬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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