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懺)

시베리아에는 참이라는 동물이 산다. 어떤 치들 가운데는 참을 곰이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크기가 딱 그만한데다가 뒷발로 뚜벅뚜벅 걷는 그 놈을 온통 시야가 희미해지는 눈발 속에서 보면 영락없는 곰으로 착각되기도 하지만 곰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가지식자(假知識子)들은 또 참을 원숭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참이 원숭이 종류라고 주장하는 논자들은 원숭이류가 진화하고 분화하면서 열대성 기후를 좋아하는 놈들은 아프리카를 자생지로 삼았고, 추운 것을 좋아하는 놈들끼리 어울려 북방으로 갔는데 바로 그게 참이라고 한다. 얼핏 들으면 일리가없는 말로 들리지는 않지만, 주박이 되는 이론과 학설로 제 눈과 귀를 틀어막고 스스로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어버린 이들이 가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랫턱이 튀어나오지 않고 안으로 잘 들어가 있는 것 하며 얼굴에 털이 없는 것을 보면 참이 원숭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간의 일종이라는 것을 그들은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시베리아의 겨울은 기후의 변덕이 심해서 날씨가 마냥 좋을 줄 알고 겁 없이 긴 사냥길에 오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어쩌다 길눈이 어두워 실종하는 사람들이 많다. 갑자기 사위가 어두막해지면서 눈보라가 불어치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길이 지워지고, 흔적 없는 길 위에서 사냥꾼의 마음은 공황에 빠져버린다.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 황급히 몰아쉬는 입김은 살얼음이 되어 뺨에 달라붙고 칼끝 같은 바람은 사정 보지 않고 언 살갖을 찢어 놓는다. 하므로 그 와중에 살아남는 이가 좀처럼 없다. 온 목숨을 걸어 놓고 제 딴에는 한 방향을 향해 열심히 전진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 꼬리를 물려고 맴도는 실없는 봄날의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한 군데를 몇 바퀴나 거듭 배회했을 뿐이다.

길 잃은 사람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승냥이 떼의 좋은 먹잇감 된다. 그런데 가끔씩 그런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이 있고, 마을로 생환하여 그 날을 생일삼아 잔치를 벌이는 사람이 있다. 배는 고프고 온몸이 한기로 뻣뻣하게 굳어 탈진되었을 때, 갑자기 인기척처럼 등 뒤가 뜨끈해지는데 그가 뒤돌아보기도 전에 누군가가 조난자의 어깨를 툭 친다는 것이다. 환영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면 거기에 참이 있다. 지금 말하려고 아까는 그냥 지나갔는데, 참의 특징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뜨겁다는 것이다. 얼마나 뜨거운가 하면 이 짐승이 딛고 지나간 곳은 눈이나 얼음이 흥건히 녹아있다. 참은 인간을 좋아해서 아주 멀리서도 인간의 냄새를 맡고 온다고 한다.

그러면 길 잃은 조난자는가지고 있던 칼로 반가워서 빙글빙글 웃고 있는 참의 배를 갈라서 내장을 꺼낸다음, 그 속에 들어가면 돤다. 참에겐  피가 별로 없다는데 실핏줄과 살 속에 고농축된 피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눈보라 치는 얼음장 위에 벌렁 누운  채 참은 실종자가 칼을 들고 그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는 동안데도 마취제 없이 개복 수술을 받는 것 마냥 눈만 꿈벅꿈벅하고 있단다. 자신의 몸이 들어갈 만큼 참의 내장을 들어내고 조난자가 그 속에 들어가 웅크리면 따뜻한 한증탕에 든 것처럼 후끈하다. 뿐 아니라 참의 뜨거운 벗속은 동상으로 못이 박힌 어혈을 단번에 풀어준다. 추위와 동상을 해결했으면 이제 배고픔을 해결해야 하는데, 허기진 조난자는 방금 파낸 참의 뜨거운 내장을 오물오물 씹어 먹어도 좋고 자신이 들얹아 있는 참의 뱃속에서 젓을 빠는 새끼처럼 야금야금 살을 파먹어도 좋다. 참의 육질은 어릴 때부터 우유만 먹여 키운다는 저 어느 색목인 나라의 송아지 고기보다 맛있고 저작을 하면 할수록 살코기로부터 갖가지 신비로운 성분이 발효한다고 한다.

참은 배에 긴 칼금을 맞은 채로도 일주일 정도는 정상대로 심장이 벌떡이고 눈도 꿈벅거리며, 죽고 나서도 한달간이나 생전의 체온을 유지한다고 한다. 시베리아에서 길을 잃고 사경을 헤매다가 구조된 조난자들은 거개가 참의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했다는데, 참이 이렇듯 잘 알려지지 않고 이 변변치 않은 사람의 글에 의해서 널리 알려지는 까닭은, 인간에게 수치심이 있기 때문이다. 목숨을 부지한 조난자는 차마 반가운 동료를 죽이고 그 덕분에 살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기를 꺼린다. 칼로 배가 쭉 갈라진 동료가 오랫동안 죽지 않고 눈을 꿈벅이며 '살려줘, 살려줘. 나는 너의 친구잖니?' 하고 호소했다는 것. 그런데도 자기 혼자 살기 위해 동료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안고 그 피와 살을 먹고 마셨다는 것을 수치로 여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정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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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나 많은 참을 죽이고 살아남았을까? 그래서 가끔 뜻모르게 살아있는 게 부끄러워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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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百)의 그림자

평론가 신형철 추천작중 하나로 큰 기대없이 집어들었다가 뭉클한 마음으로 책을 덮게 되더군요. 다소 애매한 환상소설인줄 알았는데 신형철의 해설을 보니 어쩔수없는 선택이라는 거 이해가 됩니다. 신형철은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 소설은 사려 깊은 상징들과 잊을 수 없는 문장들이 만들어 낸, 일곱 개의 절(癤)로 된 장시(長詩)다. 이 소설은 한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다. 고맙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이 그냥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라고 썼네요. 참 평론가가 쓴 글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게 귀엽습니다. 노골적인 주례평론이나 빨아주는 그런 글 하고는 다르지요. 신형철이 고맙다고 한 이 소설을 찬찬히 반복해서 읽어 보세요.

주인공이라 할수 있는 은교와 무재의 대화에는 뭔가 어색한게 있는데 그 이유가 그들의 대화에는 '독단적인 판단이 없고 그 판단의 강요가 없으며 효율을 위한 과속이 없다. 그대신 어떤 윤리적인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대화를 느리고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만든다' 라고 해설을 하네요. 사랑한다면서도 내 판단을 은연중에 강요하고 결론을 빨리 내리는 무의식의 폭력의 행하는 그동안의 대화가 부끄러워졌습니다.

특히 사랑에 대해서 희망이 희미해 지셨거나 우리의 세상이 과연 살만한 곳인가 의문이 드시는 분들에게 추천. 건물입대업이 희망이신분들에게는 비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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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그날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물결이 물결을 불러 그대에게 먼저 가 닿았습니다
입술과 입술이 만나듯 물결과 물결이 만나
한 세상 열어 보일 듯 했습니다
연한 세월을 흩어 날리는 파랑의 길을 따라
그대에게 건너갈 때 그대는 흔들렸던가요
그 물결 무늬를 가슴에 새겨 두었던가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강물은 잠시 멈추어 제 몸을 열어 보였습니다
그대 역시 그처럼 열리리라 생각한 걸까요
공연히 들떠서 그대 마음 쪽으로 철벅거렸지만
어째서 수심은 몸으로만 겪는 걸까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이 삶의 대안이 그대라 생각했던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없는 돌다리를
두들기며 건너던 나의 물수제비,
그대에게 닿지 못하고 쉽게 가라앉았지요
그 위로 세월이 흘렀구요
물결과 물결이 만나듯 우리는 흔들렸을 뿐입니다

- 권혁웅「황금나무 아래서」문학세계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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