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arius.net
October 31, 2004
내가 눈을 감는 것은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있을
너의 모습을 보고 행복해하기 위해서다.
(강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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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회사원/철학자인 강유원씨의 소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arimarius.net)
헤겔철학으로 박사논문을 썼다고 하는데 나는 헤겔의 ㅎ도 모른다. 다만 최근에 그가 쓴 '공산당 선언 공부하기'라는 책을 읽었을 뿐이다. 내가 어떤 일/사람/물건에 빠졌을 때 시작하는 건 그것에 대한 책을 사거나 스토킹을 하거나 그것을 닳도록 써보는 것인데 이번에는 엄청나게 긴 게시판을 처음부터 읽어보고 있다. 거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참 아는 것도 많고 글도 논리적으로 잘 쓴다. 심지어는 겸손하기까지 하다. 물론 때로는 지나치게 예민해서 쓸데없이 소모전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수유+너머의 고미숙과 이진경을 아주 싫어한다. 그건 아마도 그들이 노마디즘을 논하고 마르크스를 주무르면서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거다. 수유+너머에 한번 밖에 가보지 못했지만 강유원씨의 지적이 상당부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수유+너머의 공동체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 사람은 안경알을 갈아서 끼니를 때우며 철학을 연구한 스피노자와 제일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최소한 자신의 공부에 타협하지 않는 자존심으로 공부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욱 맘에 든다. (교수짓 하지 않고 동막에서 시쓰고 사는 함민복 시인하고 비슷하다.)
게시판을 탐독하다 오늘 주은 한마디를 보니 더더욱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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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arius.net에 가면 강유원씨의 강의가 mp3로 올라와 있다. 그중에서 제일 만만한 '공산당 선언'을 들어보니 꽤 재미도 있고 잘 하면 세계사를 비롯한 몇가지 과목을 함께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여름 방학때 저녁먹고 나서 한시간씩 식탁에 둘러앉아 공산당선언을 식구들과 공부하기로 했다. 사십대 아줌마,아저씨,중딩,초딩이 mp3앞에 둘러앉아 공산당선언 강의를 듣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좀 웃기기는 하다. 사회적 생산도구를 가지고 있으니 그 이름도 거룩한 브루조아가 제 자식에게 의식화 교육을 시키냐고 말하면 '내 새끼 교육이니 내맘'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설마 중딩과 초딩이 공산당선언을 공부한다고 해서 장래 뛰어난 좌파 혁명가가 되거나 맹렬좌익분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공부를 통해서 내가 살고있는 이 세계가 어떻에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역사적 사건들의 산물이고 이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보고 싶다. 그래야만 최소한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 이리저리 휩쓸리며 마지막 한방울까지 쪽쪽 빨리지는 않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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