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강화역사문화연구소에 공부하러 갔다가 함민복 시인을 만났습니다. 강화도 동막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그는 작달한 키에 인상좋은 얼굴로 웃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나온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에 있는 시 몇편을 낭송하기도 했지요.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고하네요.
less.. 그늘 학습 / 함민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나온 화가 장분남. 가루분에 사내남자(사내를 가루내는 여자라니...^^)를 쓰는 그녀는 경희대 84학번으로 걸걸할 말띠 술꾼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일곱병을 마시고 멀쩡해야 가입할 수 있다는 동막골 술꾼 일진회 회원으로 회원중 한명은 사망, 한명은 단주, 두명은 풍을 맞아 적당한 꾼들을 찾고 있답니다. 동막해수욕장에 '토토의 산책'이라는 펜션도 하고 겨울에는 분오리 저수지에서 썰매 대여, 낚시터에서 커피도 팔고 틈틈히 그림을 그리는 멋쟁이였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지사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을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더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짜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하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둘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모든 경계에는 꽃이핀다, 창비, 함민복)
이 대책없이 가난한 시인의 수필집이 '눈물은 왜 짠가'(이레) 입니다. 현재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는 초기 시집 두권은 빼고 두권의 시집하고 수필집, 그리고 김경의 인터뷰집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를 구해서 읽었습니다.
위 시는 형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어머님을 모셔야하는데 돈 400만원이 없어서 맘에 드는 깨끗한 독채 전세를 못 구해드리고 소설을 쓰기로 하고 구한 이백만원으로 마을회관에 딸린 방에 어머니를 모시게 되는 이야기에서 나온 시 같습니다. (이런 가슴아픈 이야기를 시로 쓸 수 있다니... 시인은... 참!)
시인의 말대로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여자몸에 아이하나 심지 못하고 홀로 가난하게 살면서 강화도 동막사람들의 삶과 갯벌을 하나하나 시로 옮겨가는 이사람...
정말 대책없이 좋아졌습니다.
민복형! 조만간 소주한잔 하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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