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김포 메가라인을 뒤져보니 볼만한게 없다고 해서 이것저것 뒤지는데 문득 며칠전 신문 기사 하나가 생각났다. 다큐멘터리 채널인 큐채널에서 PD로 일했던 이창재감독이 무당 다큐를 찍었는데 어찌어찌 운이 좋아서 개봉하게 되었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상암 CGV 인디영화관에서 상영중.
"사이에서"는 같은 무당을 소재로 찍은 다큐지만 2004년 1월에 하이퍼텍나다에서 봤던 '영매'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일단 영매는 무속 전반에 대한 탐구라고 할수 있겠는데 세속무와 강신무가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기도 하고 동해안굿, 서해안굿 등 여러가지 무속의 내용을 보여주는 데 치중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이에서>는 무당 이해경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네들의 애환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해경을 중심으로 내림굿을 받으려는 스물여덟살 황인희, 귀신이 보이는 8살 김동빈, 30년간 무병을 앓다가 골수암 3기 진단을 받은 손명희의 이야기가 서로 물리며 이어진다. 디지탈 영화의 발전에 힘입어 인디 다큐임에도 화질이 놀랍도록 뛰어나고 생생해서 오히려 다큐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다.
감독의 역량인지 출연자의 능력인지 모르겠지만 여느 극영화만큼이나 자연스러워서 편집을 조금만 바꾸고 극영화라고 우겨도 전혀 이상한 구석이 없을 거 같다.
그네들의 신산함 삶에 대해서 무어라 말할게 없지만 자신의 인생과 영혼을 신명에 내맡기고 인간과 신 '사이에서' 살아가는 그들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나름 자신의 의지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한편에는 전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끌려가며 살아야하는 이들...
신과 인간, 이승과 저승,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이네들이 최소 오천년간 우리의 삶과 생각이 바뀌고 의식구조가 바뀌는 와중에도 우리 곁에 꿋꿋하게 남아있다는 사실....
그래도 그들이 불쌍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장구와 징을 치는 풍물잽이 아저씨와 할머니 얼굴에서 온 몸을 뒤흔드는 신명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물여덟살 처녀 황인희가 내림굿을 받을 때 나오는 무속가 대목에서 이해경의 선창으로 노래를 굿판의 무당들이 따라 부르며 서러운 자기 처지에 복받치는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사바 세계에/불리워 갈제/날따라 오너라/머얼고도/험하고도/거치른/길이로다/가다보면/넘어진다/넘어져도/다시 일어나라.
(중략)
"신도/싫고/인간도/싫다/멀리멀리/떠나고만 싶다"
그 소리에 너나없이 눈물 자락을 훔칠 때, 이해경은 눈물을 옷고름에 닦더니,
"초상났느냐. 굿하자!"
하며 굿판을 다시 벌입니다. 이 굿판은 아마도 무당들 자신을 위한 굿판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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