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좋았다
모두들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사람들의 말 하나하나가
풍요로운 국부를 이루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말할 권리를 뜻했다
그때는 좋았다
사소한 감탄에도 은빛 구두점이 찍혔고
엉터리 비유도 운율의 비단옷을 걸쳤다
오로지 말과 말로 빚은
무수하고 무구한 위대함들
난쟁이의 호기심처럼 반짝이는 별빛
왕관인 척 둥글게 잠든 고양이
희미한 웃음의 분명한 의미
어렴풋한 생각의 짙은 향기
그때는 좋았다
격렬한 낮은 기어이
평화로운 밤으로 이어졌고
산산이 부서진 미래의 조각들이
오늘의 탑을 높이높이 쌓아 올렸다
그때는 좋았다
잠이 든다는 것은 정말이지
사람이 사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사람이 사람의 여린 눈꺼풀을
고이 감겨준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심보선/눈앞에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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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자신이 스스로 무슨 뜻의 말을 하는 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이를테면 .... '나는 소설을 안읽어!' - 인간으로 태어나 그 큰 뇌를 먹여살리면서도 문학의 세례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걸 이다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그대의 무신경에 경배를...
'도대체 시를 어떻게 읽어?' - 이런건 대부분 우리의 한심한 문학교육 책임일터....
인수봉에 미쳐 돌아다니던 젊은 시절에 (그때는 왜 그리 뜨거웠을까?) 암벽기술과 파이프담배피던 겉멋뿐 아니라 인수봉에서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을수 있으려면 시를 읽을줄 알아야한다며 '황동규'를 알려준 혁이형이 없었다면 저도 먼 길을 돌고있겠지요.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시를 읽지 못하거나 술자리에서 시한줄 외우지 못하면 부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그때 그시절에는... 돈많은 부모덕에 자가용을 타고 다니던 애를 부러워하지 않았으며 맥주양주 마신다고 뻐기지 못했으며.... 오늘을 팔아 내일을 사거나 막막한 마음에 복권을 사는 일이 드물었던 그시절... 이게 바로 '오래된 미래'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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