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근원
박아무개라는 방통위 위원이 현재 황당하게 일어나고 있는 검열에 항의하기위해 올린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에 대해 '여자 음부 그림'을 올렸다고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참 한심하기도 하다. 이 그림은 미성년자가 둘이나 있는 우리집에서도 책표지에 당당히 나와있으며 아이들과 이 그림을 보며 정말 대단한 발상이야 하면서 같이 감탄하기도 한다.
제발! 니들도 다 씹해서 거기서 나왔거든? 뭐 어떻다고 그러니?
아, 이러니 무서운 테러범이 부러워 하는 나라가 되는 거라고. 꼰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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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6일 파리 오르셰 미술관은 19세기 사실주의 거장인 쿠르베의 걸작 을 미술관의 정식 소장품으로 진열하는 역사적인 행사를 가졌다. 세로 55, 가로 46센티미터에 불과한 이 작은 그림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주제로 회화사상 악명을 떨쳤다
원래 제목인 '세상의 근원'대신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X로 불려졌던 그림. 이 위험한 그림은 1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의 격렬한 비난과 공격을 피해 음지식물처럼 그늘에 숨어 지냈고, 오직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덮개 그림으로 철저히 위장한 채 자신을 보호했다. 이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오르세 미술관에 걸리기까지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역정은,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미술품의 고초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말해준다
때는 1866년 숨 가쁜 정세의 변화로 몸살을 앓는 격동기의 파리, 엄청난 부호이지 희대의 방탕아로 숱한 염문을 뿌린 터키 대사 카릴 베이는 당대 최고의 화가인 쿠르베에게 은밀한 주문을 한다.자신의 음탕하고 방종한 취향을 만족시킬 지극히 외설적인 그림을 부탁한 것이다
착취당하고 박해받는 서민들의 수호자로 부르주아 계급의 기만과 위선에 맞서 열정적으로 싸웠던 혁명아 쿠르베는 과격하고 타협을 모르는 기질답게 회화의 역사를 뿌리째 뒤엎는 충격적인 음화를 제작한다. 아름다운 얼굴과 육감적인 몸매를 과감히 잘라내고 여성의 생식기만을 화면 가득 등장시킨 파격적인 구도를 선택한 것이다
수천년 이상 지속된 금기를 대담하게 깨부수고 냉정한 시선으로 인류의 출생지를 묘사한 혁명적인 그림은 곧 카릴 베이가 아끼는 소장품이 되었다. 대단한 미술품 수집가이며 애호가인 카릴 베이는 그림을 비밀 진열실에 몰래 숨겨 두엇다. 극소수의 가까운 사람들만이 고전주의의 대가인 앵그르의 걸작 옆에 나란히 걸린 비밀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 뒤 카릴 베이의 품을 떠난 그림은 헝가리. 독일. 소련으로 거처를 옮기며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55년 세계적인 성의학자이며 철학자인 자크 라캉의 소유가 된 다음에야 겨우 안식을 취하게 된다. 자크 라캉은 그림의 안전을 우려한 나머지 초현실주의 화가 앙드레 마송에게 덮개 그림을 주문해서 위장을 했다. (쿠르베 자신도 비밀 그림을 가리기 위해 이라는 풍경화를 덮개그림으로 그렸음) 풍경과 여성의 하체를 교묘하게 결합한 마송의 가리개 그림 덕분에 은 파괴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상속세 대신 국가에 기증될 때까지 손상을 입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명작을 보존하기 위한 이 같은 소장가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화는 반드시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며 통렬하게 기성 체제의 위선을 비판했던 쿠르베. 그의 강한 저항 정신이 그토록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작품을 탄생시킨 근원이 된 것이다.
- 이명옥 저 사비나의 에로틱 갤러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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