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요리 도전기

그동안 요리라고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라면이나 겨우 끓이던 아저씨(대한민국 중년남을 칭하는 참 편한 용어였는데 원빈때문에 좀 껄끄럽군요^^)가 어느날 뜻한 바가 있어 요리를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터이니 아무생각없이 저지른 건 아닙니다.


최근 여러가지 상황에 견디지 못하고 몇주전에 결심하기를,
1. 채식주의 : 여기서 채식에 주의를 붙이는 것이 적당한 말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길기 때문에 맘에 안들어도 일단 채식주의라 하지요. 고기를 엄청 좋아하는 제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 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글을 따로 써보겠습니다.
2. 한 달에 한번씩 금식 : 마지막주 토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5끼
3. 먹는 것의 소중함을 체감하기위해 요리배우기

이렇게 세가지를 실행에 옮겨보기로 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단 한번 해보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네요. 채식과 단식은 나중에 쓰기로 하고 우선 재미난 요리강습이야기입니다.
칼질을 못하는 저로서는 우리음식은 아무래도 너무나 험한 길일 것이라 제일 처음으로 제외했고 몇가지 생각해보니 이태리음식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흰밀가루, 흰쌀 같은 도정한 곡물을 먹지 말자는 생각이고 게다가 수입한 밀가루로 만든 파스타국수를 좋아하지 않지만 자전거와 달리기를 하면서 즐겨먹었기 때문에 그나마 차선책이었습니다. 짧은 생각에는 무엇보다 쉽게 배우고 칼질 많이 안하고 아이들한테 생색내기 좋고....^^   마침 현대백화점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센터 팜플렛을 보니 '박주희의 웰빙 이탈리아 요리'라는 코너가 이번에 개강이었습니다. 서른명의 주부와 함께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좀 있었지만 일단 지르고 말았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오전 10시,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가니 순식간에 꽂히는 60개의 눈빛!  자리에 주섬주섬 앉고 보니 저는 앞치마도 안가지고 왔더군요. 한조에 6명씩 앉아서 일단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나서  조별 실습에 들어갔습니다.


박주희선생님과 그녀의 조수, 위쪽에 거울이 있어서 어떻게 하는지 볼 수 있게 되어있더군요.



실습을 하는 조원들. 강의를 들을 때는 쉽게 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경험있는 주부들도 막상 실습에 들어가니 레시피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첫번째 요리는 유채, 앤쵸비 소스의 스파게티(Spaghetti Con Cime Di Stupro E Gamberi)




두번째 요리는 쇠고기 루꼴라, 버섯, 발사믹 소테(Straccetti Di Manzo Con Ruccola)




이렇게 두가지를 만들어서 각자 조별로 테이블에서 시식을 하고 설겆이를 하는 걸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잘 먹고(채식주의를 하느라 두번째 요리는 구경만) 남는 게 힘이라 설겆이를 자청해서 점수들 좀 땄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바로 백화점으로 가서 재료를 구입했습니다. 저녁에 식구들에게 아빠가 배운걸 실습하기로 약속했거든요. 집에 있는 건 올리브유, 파스타국수, 발사믹, 버터정도 밖에 없으니 이것저것 많이 필요하더군요.

쇼핑 목록은 : 유채나물 한봉지, 말린 홍고추, 케이준 스파이스(향신료), 화이트 와인 1병, 생크림 500cc 한통, 파슬리 가루, 엔쵸비 병조림, 쇠고기 600그램



말린 홍고추, 파슬리 가루(강의에서는 생파슬리를 썼는데 구하기 힘들어서), 엔쵸비




캘리포니아 와인인데 직원한테 요리에 쓸거라고 말해서 추천받았습니다. 14000원. 아주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우선 유채나물을 다듬고 씻었습니다. 나물을 다듬기 전에 우선 나물을 데칠 물을 냄비에 올려놓으면 시간 절약이 됩니다. 나물 데친 물에 파스타를 삶을 예정이기 때문에 나물데칠 물에는 소금을 한숫가락 넣습니다. 그래야 간도 맞고 비등점이 높아져서 파스타도 잘 삶아 진다고 합니다.



새우를 다듬어서 3등분하고 케이준 스파이스를 뿌려 버무립니다.




팬에 올리브유를 넣고 새우를 살짝 볶은 후, 화이프 와인과 파슬리를 넣고 수분이 거의 없어질때까지 볶다가 생크림을 넣고 2분간 끓이면서 후추를 넣어줍니다. 맨 나중에 파스타에 올릴 거니까 따로 보관.


첫번째 요리의 꽤 중요한 등장인물인 앤쵸비 - 에스파냐바스크어로 건어물을 뜻하는 안초바(anchova)에서 온 말이다. 생선을 묽은 소금물로 씻어서 포화식염수에 7∼8시간 담근 후,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을 뿌려서 무거운 것으로 누르고 뚜껑을 덮어서 수개월 동안 냉암소에 저장한다. 이 때 월계수나, 후추 ·정향 등의 향신료를 넣기도 한다. 다 익은 후에 꺼내어 배를 갈라 뼈를 제거하고 둘둘 말아서 병 같은 그릇에 꼭꼭 채우고 올리브유를 부어 꼭 싸매 둔다. 이대로 오르되브르(애피타이저)로 쓰기도 하며, 안초비소스도 만든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양파, 마늘을 다지고 말린 홍고추는 작게 자른후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볶다가 앤쵸비를 넣고 1분 정도 더 볶습니다. 유채를 넣고 볶으면서 수분이 부족하면 육수를 넣어주거나 유채삶은 물을 넣어줍니다. 맨 나중에 소금, 후추로 간을 해야합니다.

유채를 볶으면서 파스타를 삶기 시작하는게 좋습니다. 유채 삶은 물에 7분간 파스타를 삶아줍니다. 1인분에 100g씩해서 400g을 삶아서 유채볶은 거하고 다시 볶아줍니다. 나중에 다시 파스타를 볶기 때문에 살짝 덜 익히는 게 요령입니다.


제일 처음에 만들어둔 새우를 다시 데워서 접시에 담은 파스타위에 올리고 파슬리 가루를 뿌려주면 완성.



두번째 요리인 쇠고기 요리. 설명하느라 따로 쓰지만 두가지가 동시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첫번째 요리와 동시에 진행합니다. 처음이라 머리가 핑핑 돌더군요.^^


먼저 쇠고기에 소금, 마늘, 후추, 올리브오일, 파인애플 주스를 넣어서 주물러 놓고 15분간 재워둡니다. (업계용어로 마리네이드 시킨다^^) - 유채나물 데칠때 같이 준비해둬야죠.


양송이버섯을 4등분해서 올리브유에 충분히 볶아둡니다.


팬에 고기를 넣고 갈색이 될때까지 볶다가 와인인을 넣고 밀가루를 입힌 버터를 넣어 와인이 반으로 졸면 미리 볶아둔 양송이 버섯, 발사믹 비네거와 꿀(!)을 넣습니다.  이때 와인의 향과 발사믹 비네거의 향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밀가루를 입힌 버터 - 왜 밀가루를 입히는지는 까먹었네요.

접시에 야채(배울때는 '루꼴라'라고 하는 야채를 썼는데 이것도 구하기 어려워 대충 비슷한 걸로 대체)를 깔아놓고 그 위에 볶은 쇠고기를 올리면 완성입니다.


아이들에게 미리 식탁에 그릇을 세팅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진정한 이태리요리엔 피클따위는 없습니다.^^  대신 올리브와 앤쵸비를 반찬으로 준비.





과연 아이들의 평가는?



잠시뒤에 완판되었습니다.^^


첫 요리지만 극찬을 받았고 (워낙에 열흘 굶은 거지 수준의 위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이라 공신력은 좀 떨어집니다.^^) 요리하고 남은 와인을 홀짝 거리면서 식구들과 왕수다를 떨며 한끼의 식사를 마치니 너무나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 가뜩이나 바쁘고 지친 가장들에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갈아 참으로 미안하지만 우리에게 과연 소중한게 무엇인지, 먹는 것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 일인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요리를 할 줄알면 여자 꼬시는데 엄청난 이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럴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금요일 오전에 배우고 오후에 재료준비하고 저녁을 준비했고 반응이 너무 좋아 (아무래도 좀 수상하기는 하지만) 일요일 아침에도 혼자서 모든 요리를 준비해서 다시 한번 복습했습니다. 두번째는 레시피를 안보고 했더니 미묘하게 빼먹은 게 있더군요. (맨 마지막에 꿀을 넣거나 파슬리를 뿌리거나 하는 것들)
다음은 제가 좋아하는 봉골레 파스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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