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여름 이야기(3)

군의관 마치고 처음으로 직장을 잡은 곳이 삼척이고 여기서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도 했고 민물고기 잡아서 키우기도 하고 문예회관앞 공터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고 주위 강으로 산으로 많이 놀러다녀 고향같습니다. 10년이 지나서도 정겹기만 하네요.

삼척에서 제일 기억나는 음식은 곰치국하고 막국수였는데 꿈에 그리던 '부일 막국수'는 어제 너무 힘이 들어 못갔고 곰치국은 이곳 사람들이 해장국으로 먹는 음식이라 아침에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곰치는 보통 바다 다큐에 나오는 장어과의 기다란 물고기가 아니고 '물곰 또는 꼼치'라고 불리는 쏨뱅이과의 물고기입니다. 잡아서 바닥에 두면 흐물흐물해서 바닥에 퍼져버립니다. 생긴건 정말 흉악하게 생겼지요. 동해안의 곰치국은 신김치와 물곰을 넣고 끓인 시원하면서도 얼큰한 국물이 일품입니다. 삼척항에 있는 '바다횟집 (033-574-3543)'이 이쪽에서는 원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곰치국을 먹을 때면 어제 술을 많이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시원합니다.^^


삼척항

삼척항을 지나 7번국도로 들어서자마자 아주 힘든 깔닥 고개가 나옵니다. 꼭대기에 올라서면 맹방해수욕장이 보이는 아주 전망이 좋은 곳이 있는데 얼마전부터는 터널이 뚫리고 7번국도가 고속화 도로로 바뀌면서 올라갈 필요도 없어지고 더불어 탁트인 전망도 사라졌습니다. 물론 그 길은 자동차전용도로고 지형을 따라 높낮이와 굴곡이 있는 자연스런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삽질공학 덕분에 지형과 무관한 직선의 일관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런 길을 볼 때마다 가뜩이나 인간이 자동차라는 철갑을 두르고 나서 자연과 엄청난 거리로 멀어졌는데 공학의 발달로 저런 배타적인 길이 나오고 나서는 더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힘든 깔딱을 오르는 지관. 차가 없어서 지그재그로 공략하고 있습니다.





멀리 맹방 해수욕장이 보이는데 파라솔 몇개만 쓸쓸하게 서있습니다. 동해안은 강릉 경포대, 동해 망상 해수욕장까지만 복작거리고 그 이후는 아주 한산한 가족단위 해수욕장입니다. 비키니에 목마른 두 남자는 당연히 통과^^



오른쪽이 새로 뚫린 고속화도로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 길을 뚫었는지 모르지만 덕분에 낭만의 7번국도는 이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길이 자동차전용도로여서 그런지 네이버에서 삼척 - 울진간 자전거길(얼마전부터 자전거길도 빠른길 검색이 지원됩니다)을 검색해보면 황당하게도 태백을 거쳐서 가는 길이 나옵니다. 7번 국도로 가면 60km 남짓인데 태백까지 올라갔다가 불영계곡길로 내려오면 140km가 넘죠. 저는 당연히 옛 7번 국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나중에 보니 울진지나 일부 구간에서는 새길을 뚫으면서 옛길을 나두지 않고 완전히 흡수해서 사라져 버렸더군요. 덕분에 잠깐이지만 고속도로 같은 길의 갓길을 달리는 짜릿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로 고생했습니다.)



맹방해수욕장 옆으로는 아주 멋진 벗꽃길이 있습니다. 길도 좋고 차도 없고 행복한 길이었지요.




동네 아이랑 인사도 하고



웃통벗고 물도 마시고



삼척에서 울진까지 예전 길로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구간에는 엄청 많은 고개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60km를 원없이 업힐과 다운힐을 반복했습니다. 아주 재미나고 죽을 맛이었습니다.^^



참으로 한적하고 이쁜 용화해수욕장




자전거로 여행하는 두 대학생을 만났습니다. 이 청년들은 강릉까지 버스타고 와서 7번국도 따라 부산까지 10일 예정으로 여행하고 있답니다. 하루에 40km 씩.  강릉에서 삼척까지 2박 3일 걸렸는데 중딩이 속초에서 삼척까지 하루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망연자실 하더군요. (지관의 허벅지에 기가 죽었어요.^^  엄마한테 물려받은 타고난 허벅지) 지관이는 저 형아들을 너무나 부러워 하면서 담에 대학가면 꼭 저렇게 '럭셔리'하게 여행하고 싶다고 합니다.(음~~ 바람직하죠? 럭셔리의 개념이 맘에 듭니다.^^)



장호해수욕장의 레일카. '헐~~ 저걸 더운데 왜 탈요?'  '이 더위에 잔차타는 네 놈이 더 이상해! '








끝없이 반복되는 언덕들, 언덕들.... 차가 거의 없어서 나란히 가면서 수다를 떨면서 올라갑니다.
"아빠! 이거 언제 끝나요?"
"몰라! 기억 안나! 그때는 차로만 다녔잖아!"
"우와! 내르막길이다!"
"좋아하지마라. 내려가면 또 올라가야한다구."
"허걱! 또 있어요"

"지관아! 근데 너 뒷기어에 2단계나 여유가 있는데 왜 변속안하고 힘들게 댄싱하는거야?"
"오른손에 힘이 빠져서 기어 변속을 못하겠어요. 그래서 그냥 댄싱으로 올라가요."
"헐~~ 그게 말이 되냐?, 아무튼 너는 그 허벅지를 타고 난걸 아빠한테 고마워 해야해"
"엄마한테 물려받았는데 아빠한테 왜 고마워 해야하는데요?"
"아빠가 하체튼튼 엄마를 골랐으니 그렇지!  이녀석아!"

오른손 근육에 힘이 없어서(도로 자전거의 기어변속은 산악자전거하고 달라서 손가락 전체로 변속기겸 브레이크 레버를 눌러야 하는데) 변속을 안하고 그냥 막강 허벅지로 댄싱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느다란 허벅지를 타고난 애비는 기가 팍 죽었습니다. 매달 1000km 이상 마일리지를 쌓으면서 키워온 허벅지로도 숨차게 언덕을 넘는데 동네 근처 학원만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것 말고는 따로 운동도 안하는 중딩이 타고난 말벅지로 우습게 언덕을 넘어가는 걸 보니 참 기분이 나쁘더군요.^^

심지어는 진짜 힘든 언덕 정상 근처에서 업힐을 포기하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MTB 라이더를 만나기도 했는데 도로 자전거가 씩씩하게 올라가면서 '수고 많으셔요'하고 인사했더니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시더군요.














끝없을 거 같던 언덕도 넘고 또 넘으니 드디어 강원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있는 마지막 언덕입니다. 이 마지막 언덕이 아주 끝내주게 높고도 힘들었는데 여기서 부터 맞바람까지 불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둘이서 만들어낸 말이 '업힐에 맞바람' 이라고 업친데 덥친격, 설상가상하고 동격입니다. 





울진 직전의 죽변항에서 맛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당 주인 할아버지께서 제 자전거에 장착되어 있는 전립선 안장에 무척 많은 관심을 보이시면서 할머니한테 저거 나도 갖고 싶다고 조르시는 모습이 좀 귀여웠어요.^^


울진을 지나니 왕피천에서 멱감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예전에 민물고기 전시관에 구경가면서 많이 들렸던 곳인데 왕피천은 아직도 깨끗해서 마음이 놓이더군요.




왕피천 하류를 따라 내려가는 해안도로로 들어가는 길. 정말 멋진 길이였어요. 다만 해안도로로 들어가니 엄청난 맞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왕피천 하구. 망양정 해수욕장







깃발을 보면 바람이 얼마나 센지 아시겠죠?







맞바람에 기진맥진한 지관이가 좀 쉬어가자더니 절벽에 기어올라가서 낮잠을 자네요. 오래 자면 퍼질 거 같아 10분후 다시 출발.



울진, 영덕 근처는 대부분의 상징물이 '대게'더군요. 마침 반대쪽으로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동병상련이라... 힘내세요! 를 외쳐주는데 생각해보니 저분은 뒷바람이군요. 부러워라.^^




맞바람에 시달리며 한참을 달렸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는 5km정도? 마침 이번에는 시원한 정자가 나와서 또다시 눕게 되네요.


잠시 쉬고 나서 다시 달리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덕신을 지나 해안도로가 끝나더니 예전 7번 국도는 사라지고 새로뚫린 고속화도로 밖에 없는 겁니다. 도저히 이럴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몇번을 길을 헤메고 아이폰으로 지도를 아무리 검색해도 도저히 옛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무시무시한 새길로 들어서서 잠시 달리는데 보기좋게 직선으로 쭉쭉 뻣은 길이 자전거에게는 정말 무서운 길이었습니다. 한 4km쯤 달렸는데 예전길이 폐쇄되어 새길에 합쳐져 있는 부분이 보이더군요. 그러니까 이쪽에 사시는 분들은 언덕넘어 옆 동네에 마실을 갈 때도 이제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통해서만 갈수있게 된것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차가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게 무슨 몰상식한 일이랍니까? 이런 무신경한 직선의 폭력이 몸서리치게 싫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우리 문명의 현실이지요. 저도 평생 자동차와 합체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면 이런 직선의 폭력을 전혀 모르고 살았겠지요. '거참! 시원하게 길 잘 뚫었다'고 감탄하면서요.




겨우 다시 옛길을 찾아 달리는데 잠시나마 너무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는지 다리에 맥이 탁 풀렸습니다. 

"아빠! 너무 무서웠어요. 근데 우리 영덕까지 가야하는 거예요?  얼마나 더가야하죠?"


"글쎄, 40킬로 남았으니까 두시간은 가야되겠는데.  영덕까지 오늘가야지 내일 죽어라 달리면 부산까지 갈수있어. "


"근데 죽어라 달려서 부산가면 뭐가 있어요?"

"음~~ 그러니까 아빠 동호회 친구들이 맛난 저녁사주겠다고 기다리고 있고....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비키니들이 있고.... "

대답을 하다보니 부산까지 왜 꼭가야하며 누가 부산까지 가야한다고 했으며.... 쫌 이상했어요. 그래요... 목표라는 게 일단 한번 정해지면 묘한 힘이 생겨서 괜히 꼭 거기까지 가야하는 거 같고 안가면 뭔가 루저같고... 뭔가, 쫌, 아무튼 거시기 하게 만드는 그런게 있었던 거였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데 참 한적하고 이쁜 길이 끝나더니 덜컥! 작고 이쁜 해수욕장이 나타났습니다. 구산해수욕장이었습니다.

30초간 망설이다 그만 달리기로 하고 날 저물기 전에 바닷물에 몸 담그고 놀기로 했습니다.^^  3일간 폭우에, 흙탕물에, 땡볕에, 쌩쌩 겁나는 길에 시달렸는데 나중에 해운대 비키니가 뭔 소용이겠어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카르페 디엠!
















@여행 3일째 결산(8월 4일) : 삼척에서 구산해수욕장까지 90km 주행, 8시간 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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