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골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덕분에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이 질문은 본래 윤리학의 질문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몰락은 하나씩의 질문을 낳고 그 질문과 더불어 새로운 윤리학이 창안된다.


문장이 유려하다고 소문난 신형철 편론집에 실린 서문의 일부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흉흉해도 몰락하는 자들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어 아직은 견디고 있는가 봅니다. 어쩌면 이번 불황이 지구에는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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