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이야기, 능가할능 하늘소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황동규, <쨍한 사랑 노래>전문


능소화라는 꽃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황동규의 시였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황동규에 완전히 빠져있을 때라 무슨 꽃인지 무척 궁금해 했었는데 어느날 여름 변산에서 축축 늘어지는 능소화 꽃을 보고는 단박에  알아봤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 건너편 건물에 아주 멋진 덩굴을 가진 능소화 나무가 있습니다. 앙상한 가지에서 잎이 하나둘 나오다가 한껏 꽃을 피워 타오르다 오늘 처럼 비가 오면 꽃송이째 툭툭 떨어지는 모습이 보기 징합니다.

덩굴손이 서로를 쓰다듬고 타넘다가 戀이 다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련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꿈꾸기 때문에 능소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저리는 것이겠지만 언젠가는 꽉 물고 있는 게발 같은 미련도 툭툭 떨어지는 능소화처럼 끊어버리고 마음없이 살 수 있겠지요.

비가 장하게 내리는 창을 바라보며 씁니다.














































About this en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