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 합시다

태어나면 꼭 한번은 죽어야하는 인생이니까 어떤걸로 죽을까 생각해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얼마전에 미국의 로드 싸이클 황제 암스트롱의 책을 읽어보니('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암스트롱이 고환암을 진단받았을 때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25살 꽃다운 나이, 잘나가던 싸이클 선수가 고환암이 걸렸고 게다가 폐하고 뇌까지 전이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의붓아버지한테 구타를 당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그에게 자전거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책에서 그가 꿈꾼 죽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백 살쯤 되어 죽고 싶었다. 등에는 성조기를 달고 헬멧에는 텍사스의 별을 달고서, 사이클 위에서 소리를 지르며 시속 120킬로미터의 속도로 알프스 산맥의 내리막을 달려 내려온 후에 말이다. 그리고 멋진 아내와 열 명쯤 되는 내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결승점을 통과하고는, 프랑스의 그 유명한 해바라기 밭에 누워 우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암스트롱은 고환암 말기에서 기적으로 생환하고 '뚜르 드 프랑스'을 7연속 우승하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들 대다수는 암으로 죽게 됩니다.(5명중에 3명은 암, 1명은 심장-뇌혈관계,1명은 교통사고 정도일겁니다.) 더군다나 말기암 진단받고 완치되는 경우는 아주 특수한 경우죠.(혈액암이나 임파종, 고환암등 몇몇만 가능) 그러니까 예방 및 조기 진단이 중요한거죠. 적절한 운동, 체중 감량, 금연, 금주, 스트레스 줄이고 ..... 등등 암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면 그다음에 가능한 것은 정기적인 검사로 조기 진단 받는 게 차선책입니다.

누구나 암에 대해 공포감을 가지고 있겠지만 유난히 암이 많은 가족력을 가지고 있는 저는 더더욱 그러합니다.(할아버지-직장암, 할머니-위암,큰아버지-위암, 큰모고-위암, 아버지-췌장암) 하지만 그동안 내시경을 단 한번도 안하고 버텼습니다. 젊을 때는 안아파서 안했고 마흔살이 넘어서는 무서워 버디타가 스스로에게 선물로 내시경을 주기로 결심하여 얼마전에 드디어 내시경을 했습니다.

요새는 새로운 약물이 나와 '의식하 진정 내시경'(흔히 수면내시경)이 발달되어 고통스럽지 않게 할 수 있지만 안하고 버티는 이유는 검사 과정도 과정이지만 그 전후에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더욱 멀리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저는 삶의 체험 현장 답게 '쌩으로' 내시경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루에 대장내시경과 위내시경을 한꺼번에 할 때는 대개 먼저 대장내시경을 합니다. 위내시경은 아침 금식만 하면 할 수 있지만 대장내시경은 곱창을 청소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장을 청소하는 약물을 마셔야 합니다. 보통 2리터에서 4리터를 마시는데 이게 꽤 괴롭더군요. 맛도 이상한데다가 맥주도 아닌 것을 이렇게 마셔본 적이 없으니.... 꾸역꾸역 3리터쯤 마시니 설사가 제법 맑게 나와서 대장내시경을 시작했습니다.

위내시경은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고 생긴모양도 비슷해서 그리 어렵지 않지만 대장내시경은 대장의 길이도 길고 해부학적으로 꼬불꼬불한 정도가 개인차가 많이 나기때문에 힘든 경우에는 아주 고생을 합니다.(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저도 약간 힘든 경우였는지(아니면 내시경해준 원장이 억하심정이 있었던지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거의 죽는줄 알았습니다. 장이 꼬였다가 풀어지는 대목에서 아랫배를 후비는데 마치 에어리언이 뱃속에서 요동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할 뻔 했겠습니까?ㅠ.ㅠ

대장내시경을 마치고 위내시경을 하는데 이건.....  목을 넘어갈때는 엉겁결에 넘겼는데 저는 목의 '구개반사'가 예민한지 계속 구역질이 나오는데 구역질이 가볍게 '웩웩'거리는 게 아니라 저 깊은 곳에서 완전히 속이 뒤집어져 나오는 데 '우웨웨웨엑~~~~' 하고 나오더군요. 이거 몇번 더 하다가는 위-식도 부위가 찢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역질을 하면서도 걱정이 되더군요. 하지만 도저히 의지력으로는 참을 수 없는 게 '반사작용'이니 어쩌겠어요?

다행이 검사가 정상으로 나와 안도의 한숨을 쉬고나서 고생하는 환자들의 심정을 잘 알겠더군요. 그리고 얼마나 마음이 개운한지 모르겠어요. 이후로 수면내시경을 할까 그냥 할까 고민하는 환자가 있으면 자신있게 말해줍니다.

"왠만하면 수면으로 하세요. 저 그냥 했다가 죽는줄 알았다구요" (그래야 의사도 살고 환자도 삽니다.)^^

제가 미뤄놨던 내시경 경험담을 급하게 써서 올리는 이유는 바로 오늘 오전 검사한 환자때문입니다. 55년생이니 한참인 나이인데 일생을 처음으로 내시경을 했는데 아주 거대한 위암이 발견되었습니다. 검사하는 내내 화도 나고 우울하더군요. 보험공단 검사만이라도 정기적으로 했어도 이런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 사람은 아주 운이 좋으면 암을 모두 제거하고 (물론 위를 모두 절제해야겠지요) 재발없이 살수도 있겠지만.....  제가 오죽 마음이 아팠으면 내시경 끝나고 신경안정제를 좀 더 줘서 잠을 더 오래 푹 자게 해줬습니까?  오늘 이후로는 편하게 잠들날이 없을 테니까요.

오른쪽 반 전체가 모두 암입니다. 너무 커서 한장에 다 찍히지도 않아요. 거의 위 전체를 차지하니까요.

그리고 아래의 3명의 내시경 소견은 아주 일찍 발견된 조기위암 또는 미소위암 소견입니다.(얼핏 지나치면 전문의들도 놓치기 쉽습니다.) 이런 경우는 위절제를 안하고 위점막만 절제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엄청난 차이죠. 대부분의 환자들은 매년 내시경을 반복하다가 아주 작은 위암이 발견된 경우고 물론 가끔은 처음 내시경에서 조기위암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죠.


























여기서 내시경 수가나 조직검사 수가, 이런 이야기는 하고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때 맞춰 정기 검진이라도 열심히 받으시길 바랍니다. 위내시경은 40세 이후 1년이나 2년에 한번(위험 요소가 있는 사람은 1년에 한번), 대장내시경은 3년이나 4년에 한번씩만 잘 받으면 최소한 소화관의 암으로 죽기는 상당히 어려울 테니까요.



About this entry